사랑의 기초 세트 - 전2권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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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말 중에서..

 

 사실 저는 '연인들'의 어떤 장면들에서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뚜렷이 느꼈습니다. 가령 소개팅으로 만나는 민아와 준호의 첫 장면이나...

 

 그렇지? 소개팅으로 사람을 소개 받아 사귀는 게 꽤 낯선 풍경인 게 맞지?

 소개팅에 적합하지 않은 1인이 여기 있다.

 

 우물쭈물 하고, 계속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보다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소개팅으로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이럴 때는 어떨까, 저럴 때는 어떨까,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머릿속만 복잡해 진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귀자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나는 한 발 물러 서고 또 한 발 물러서고 그러다 결국 상대가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매번 이런 패턴의 반복.

 

 감정에 과감히 몸을 던지지 못하고 자꾸 머리로 계산을 해서 그런가? 물건 하나 살 때도 확 지르지 못하고 몇 번이고 보고 만지고 생각한 후에야 구입하는 나인지라 사람은 더더욱 그런데 내가 계산적이라 그런가? 특별히 손익을 철저히 따져서 행동하지는 않는데. 오히려 그런 손익계산에는 좀 맹해서 지나고 보면 매번 손해만 보고 정작 중요할 때는 내 얘기 제대로 못하는 맹춘데...

 

 매번 가던 식당이 좋고 길도 가던 길이 좋고 산책하는 공원길도 늘상 정해져 있고 매일 3시간씩 1년을 꼬박 돌아도 그 길이 지겨워지지 않고. 그래서 사람도 한 번이라도 얼굴을 익혔던 사람이 편하고 조금이라도 오래 알던 사람에게 정이 간다.

 

 그래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 사귀다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내키지도 않고 심지어 그래야지, 마음 먹더라도 가능하지도 않다. 남들은 잘 정하던데... 나만 왜 그리 유별난지. 모든 면에서.

 

 사랑인지 아닌지, 좋은지 아닌지, 편한지 아닌지, 잘한 건지 아닌지, 이제는 하도 이런 문제에 빠져 있었더니 감각을 잃었다. 마치 진한 향수를 계속 맡으면 코가 마비되듯이.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 질러보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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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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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수성이 풍부하다, 이만한 여행서가 없다, 향기가 난다, 마음이 보인다, 마음이 아리다, 사진도 멋지다, 등등... 다른 사람들은 칭찬 일색인데, 난 그 정도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솔직히. 글도 그저 그런 것 같고 사진도 뭐, 가슴을 울리는 대단한 감동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수많은 여행서 중의 하나였다.

 

 역시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으면, 그 책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삐뚜르게나마 앉아서 읽었더라면 이 부분도, 이 부분도, 하면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을 책도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읽기 시작하면 아무리 대단한 명구라도 시시하고 뻔한 문장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젠 다른 사람이 떠난 여행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것 같다. 훌훌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지만 막상 내가 쥔 것들을 차마 놓지 못해 그저 남들이 대신 가 준 여행으로도 만족이 되는 수준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는 말이다. 이젠 진짜 내가 떠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지경에 다달아 버렸다. 슬프게도.

 

 그래서, 남들은 작가의 책을 몽땅 구입해서 볼 정도로 매력에 빠지는 이 책에, 나도 스스럼 없이 퐁당 빠지지 못했나 보다.

 

 그리고,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2년마다 한 번씩 사표를 내고 짐을 싸 전세계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예민하고 여린 그의 심장이 못마땅했다. 도가 지나친 것 아니야? 라는 비뚤어진 시선과 함께.

 

 "어차피 어디에 소속이 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마음도 잡지 못한 내가 여러 사람들과의 타협이란 처음부터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면 나랑 비슷한데. 아니, 나도 매일 하루하루가 숨막힐 것 같고 매일매일이 우울하고 불행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떠날 용기가 없어 소중한 나의 인생 한 자락, 한 자락을 한숨으로 채우는데 그는 훌훌 털어버리고 전세계를 누비니 나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나은데. 왜 그가 싫어?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박수를 쳐야 할 텐데?

 

 '남자가' 너무 여리고 예민한 것이 보기 좋지 않아서. 헉, 이 말을 토해내기가, 이런 내 생각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이런 모순 덩어리. 평소에는 남녀차별이 어떻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여성에게만 가혹한 차별을 가하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어떻고, 입으로는 죽자고 떠들어 대면서, 이 무슨 망언인지... 누구든 예민할 수 있는 것이고, 평소에는 이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괴로워하지 않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렇게 싸잡아 욕했으면서,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지? 슬픈 일이다. 나의 이런 모순이...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다. 입으로만 떠들어 댔던 나의 이론들이...

 

 내가 깨고자 했던 틀들을 정작 내 안에서는 깨지 못했었나 보다. 남성의 역할이나 여성의 역할, 남성의 모습이나 여성의 모습, 남과 여의 미덕, 적절한 매력, 주로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편견들.

 

 혹 작가가 내 글을 보더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서평을 읽을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나의 글 때문에, 나는 왜 이 모냥 밖에 안 되나, 아파하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기에. 나는 아직 당신보다 어려서 조금 더 수양이 필요하기에. 그저 모자란 인간 하나가 성장하기 위해 혼란스러워 하는구나, 그렇게 넉넉히 보아주기를. 용기가 없어 직장을 때려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마냥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그저 떼부린 것으로 치부하기를.

 

 언젠가는 나도 좀 더 성장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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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졸라를 만나다
레몽 장 지음, 김남주 옮김 / 여성신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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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졸라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꿈을 꾸었어... 내가 멋진 책을 한 권 썼는데 네가 거기에 아름답고 멋진 삽화를 그려주었지. 황금색 글자로 된 우리 둘의 이름이 첫 장에 함께 빛나고 있었어. 그런 형제애 속에서 우리의 이름은 후세에 길이 전해졌어.'

 

 이런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 서로 편지를 쓴다는 점이 우선 부럽고(요즘은 손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손편지가 아닌 이메일도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보내지 않는다. 문자와 카톡, 페이스북과 트윗이 대세) 서로가 예술로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는 부분도 부럽고 두 사람 모두 반짝이는 이름이 후세에 길이길이 남고 있다는 점도 평범한 나로서는 오직 상상 속의 일이다.

 

 이렇게 멋진 글을 세잔에게 보냈던 졸라는 왜 세잔에게 상처를 주는 소설을 쓰고야 말았을까. 죽어라 사과만 그려대는 세잔이 꼴보기 싫어서?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세잔의 소심함이 답답해서? 아니면 세잔을 폄하할 의도는 없이 그저 소설을 쓴 것이었을까? 세잔의 불성실함에 복장이 터져서?

 

 얇은 책 속에 졸라의 복잡했던 심경까지야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졸라와 세잔과의 우정이나 예술의 두 거장인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았던 영감들,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고 왜 졸라는 세잔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라는 주제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너는 나의 청춘의 전부라고 말할 만큼 각별했던 베프에게, 싫다는 사람을 굳이 조르고 졸라 파리로 오게 했던 그가, 왜 날카로운 독설로 세잔의 심장을 후벼팠는지.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란 그래서 복잡하고 미묘하고 해석이 불가하다. 어떤 이성적인 논리로도 어떤 설명으로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으니.

 

 세잔은 졸라가 그의 방에서 질식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끝내 흐느껴 울고야 만다. 졸라의 <작품> 이후로는 서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세잔이었는데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의 우정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는데 졸라의 작품도 졸라의 죽음도 세잔에게는 모두 힘겨운 것이었을 게다. 겹겹이 복잡하게 쌓여있는 세잔의 감정은 또 무엇이었을까.

 

 깨끗하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졸라의 마음도 세잔의 심장도 모두 엉키어 버린 실뭉치였을 듯. 뒤죽박죽 꼬여버린 실뭉치처럼 풀어낼 엄두도 안 나고 풀기도 어려웠겠다. 겹겹이 묶인 매듭들을 깨끗하게 풀어낸들 그게 또 무슨 실익이 있을지. 복잡하게 뭉개져 있는 것이 인간의 감정인 것을.

 

 요즘 내 마음도 얌전히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어려운 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기가 또한 힘겹다. 이건가 하면 저거고, 이곳이 실타래 처음인가 하면 또 아니고, 실을 따라가 보면 자꾸 미로로 빠지고, 이곳을 풀면 저곳이 다시 엉킨다. 그들의 마음도 이랬을지. 담백하지 못한 내 마음이, 오늘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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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예이츠
W. B. 예이츠 지음, 민병문 엮음 / 온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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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스프리 작은 섬.
 한밤은 희미하게 빛나고 정오는 자줏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이런 풍경을 보았단 말인가 예이츠는?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범인들은 맡지 못한는 냄새를 맡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작은 것을 알아 차리는 신과 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시인을 꿈꾸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너무도 특별하므로. 그들은 남들과는 다른 예민한 눈, 코, 입,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나는 한 번도 희미하게 빛나는 밤을 본 적이 없다. 자줏빛으로 타오르는 정오는 더더구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홍방울새는 들어본 적도 없고... 그는 이 모든 것을 보았고 느꼈고 알아냈던 사람이다. 놀라운 감수성. 단번에 이니스프리 섬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단 몇 줄의 수사들, 말들, 단어들. 여행 홍보팀에서 일했으면 꽤 대단한 실적을 냈을 것 같다는 또 엉뚱한 생각.

 

 이런 시들을 자꾸 읽고 싶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설명해 주는 시, 예쁘고 환상적인 풍경을 내 머릿속에 기꺼이 펼쳐 내보여 주는 시, 황홀해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단번에 날려 보내줄 수 있는 시.

 

 현실이 추악해서 자꾸 환상과 신기루를 좇는 걸까. 시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걸까.

 

 내가, 나이 들어 죽을 때
 어리석지만 열정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길.

 

 어리석은 사람이 되길 소망하게 된다. 더 유치하게 더 어린아이 같이 더 솔직하게 더 발랄하고 재미있게. 현실에서 아예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런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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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 창비시선 295
정끝별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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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는데. 나는 시는 예쁜 시들을 좋아한다. 아니다. 류해인 류의 시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정확한 정의는 아니다. 개인적인 시, 라면 조금 근접하려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감정이나 고뇌를 표현한 시들을 좋아한다.

 

 신문을 통해, 사회비판적 내용의 논설이나 사회 과학 서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위선과 허상을 고발하는 것은 충분하니, 시는, 시만은 순수하게 인간 내면에 집중했으면 하나 보다. 맨날 신문이고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떠드는 변하지도 않을 정치판이며 남녀 차별이며 인권침해며 고부갈등이며 사회적 약자며 노동착취며 유리 천장이며 행복지수며 머 이런 얘기들 말고 시에서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에만 집중하고 싶나 보다.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순수랄까, 이런 것들을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 같다. 비열한 사회 속에서 갖가지 더러운 꼴들을 보고 그 속에서 뒹굴지만 그래도 갓난아기의 해맑은 눈동자는 언제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주길, 하는 아버지의 심정? 이런 건가?

 

 물론 내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시인들을 시들을 좌지우지 해야겠다는 건 아니고, 그저 내 시 취향에 대해 잠시 설명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불멸의 표절, 당신의 파업 등 그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정끝별과 와락이 주는 시적 느낌과는 달리.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했지만 그저 내 취향이 그렇다는 거다. 내가 위로 받는 시는 저항시가 아니고 서정시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룰 수 없는 별은 많지만
 잊힐 수 없는 별은 많지 않다.

 

 내가 꼽은 그녀의 시 중 최고의 구절.
한참이나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다.

일순간 마음이 먹먹해지는 시인들의 말들, 구절들, 입김들.

 

난, 이런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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