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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졸라를 만나다
레몽 장 지음, 김남주 옮김 / 여성신문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졸라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꿈을 꾸었어... 내가 멋진 책을 한 권 썼는데 네가 거기에 아름답고 멋진 삽화를 그려주었지. 황금색 글자로 된 우리 둘의 이름이 첫 장에 함께 빛나고 있었어. 그런 형제애 속에서 우리의 이름은 후세에 길이 전해졌어.'
이런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 서로 편지를 쓴다는 점이 우선 부럽고(요즘은 손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손편지가 아닌 이메일도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보내지 않는다. 문자와 카톡, 페이스북과 트윗이 대세) 서로가 예술로 멋지게 어울릴 수 있다는 부분도 부럽고 두 사람 모두 반짝이는 이름이 후세에 길이길이 남고 있다는 점도 평범한 나로서는 오직 상상 속의 일이다.
이렇게 멋진 글을 세잔에게 보냈던 졸라는 왜 세잔에게 상처를 주는 소설을 쓰고야 말았을까. 죽어라 사과만 그려대는 세잔이 꼴보기 싫어서?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세잔의 소심함이 답답해서? 아니면 세잔을 폄하할 의도는 없이 그저 소설을 쓴 것이었을까? 세잔의 불성실함에 복장이 터져서?
얇은 책 속에 졸라의 복잡했던 심경까지야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졸라와 세잔과의 우정이나 예술의 두 거장인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았던 영감들, 이런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고 왜 졸라는 세잔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라는 주제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왜? 가장 친한 친구에게, 너는 나의 청춘의 전부라고 말할 만큼 각별했던 베프에게, 싫다는 사람을 굳이 조르고 졸라 파리로 오게 했던 그가, 왜 날카로운 독설로 세잔의 심장을 후벼팠는지.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란 그래서 복잡하고 미묘하고 해석이 불가하다. 어떤 이성적인 논리로도 어떤 설명으로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으니.
세잔은 졸라가 그의 방에서 질식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끝내 흐느껴 울고야 만다. 졸라의 <작품> 이후로는 서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세잔이었는데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의 우정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는데 졸라의 작품도 졸라의 죽음도 세잔에게는 모두 힘겨운 것이었을 게다. 겹겹이 복잡하게 쌓여있는 세잔의 감정은 또 무엇이었을까.
깨끗하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졸라의 마음도 세잔의 심장도 모두 엉키어 버린 실뭉치였을 듯. 뒤죽박죽 꼬여버린 실뭉치처럼 풀어낼 엄두도 안 나고 풀기도 어려웠겠다. 겹겹이 묶인 매듭들을 깨끗하게 풀어낸들 그게 또 무슨 실익이 있을지. 복잡하게 뭉개져 있는 것이 인간의 감정인 것을.
요즘 내 마음도 얌전히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어려운 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기가 또한 힘겹다. 이건가 하면 저거고, 이곳이 실타래 처음인가 하면 또 아니고, 실을 따라가 보면 자꾸 미로로 빠지고, 이곳을 풀면 저곳이 다시 엉킨다. 그들의 마음도 이랬을지. 담백하지 못한 내 마음이, 오늘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