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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믹 - 세기말 탐정신화 ㅣ JDC 월드
세이료인 류스이 지음, 이미나 옮김 / 비고(vigo) / 2021년 12월
평점 :
제2회 메피스토 상 수상작!
새해 첫날 밀실경으로부터 날아온 살인 예고장! 올해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일본 열도를 뒤흔든 전대미문의 연속 살인!
세이료인 류스이의 96년 작품 '코즈믹'은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의 범죄사건이 펼쳐진다. 우선 1년 안에 1200건의 밀실 살인을 일으키겠다는 밀실경의 말이 실현되려면 하루에 3~4개씩 꾸준히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도 오직 밀실 상태에서의 불가능에 가까운 살인사건으로만. 이것만 해도 머리가 아득해지는데, 이 밀실경 사건을 해결하고자 모인 일본 탐정 클럽(JDC)의 탐정 수는 모두 350명이다. 1200개의 밀실 살인을 일으키겠다는 밀실경이나 그에 대항하는 350명의 일본 탐정 클럽이나- 아무튼 이제까지 추리소설에선 듣도 보도 못했던 우주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스케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200개의 밀실 살인만 해도 골치 아픈데, 여기에 현재 영국에서 발생 중인 연쇄 토막 살인 사건까지 더해진다. 스스로를 재키 더 리퍼라 칭하는 범인은 하루에 꼬박꼬박 4명씩 살해한다. 즉 일본과 영국에서 밀실경과 재키 더 리퍼가 벌이는 살인 사건만으로 하루 피해자가 7~8명씩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 해결이 1주일만 늦어져도 50여 명이 죽어나가고, 한 달만 늦어진다면 무려 2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면 세이료인 류스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밀실경, 재키 더 리퍼 위에 일본에서 있었던 과거의 대량 연속 살인사건까지 포개버린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다면 이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범죄 사건- 즉 코즈믹 호러의 영역에 도달해버린 듯하다.
어째서 이 작품이 추리 소설 강국인 일본 내에서도 그토록 화제의 중심에 올랐는지 알만하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추리소설이 내세운 모든 문법을 모조리 깨뜨린다. 그리고 오직 세이료인 류스이만의 추리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때문에 이 소설은 메타 소설의 장르에 포함된다. 또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며, 픽션과 논픽션의 장벽마저 무너진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작품이다. 팁을 주자면 니시오 이신, 사토 유야, 노자키 마도의 소설을 확실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적어도 이 소설이 불호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나는 언급된 작가들을 확실하게 좋아하는 타입이라 적어도 이 소설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엄청 좋았냐고 하면 그건 좀 애매하다. 세이료인 류스이의 우주적 창작관을 무리없이 받아들이기엔 추리소설에 기대하는 내 고정관념이 너무 견고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 이 소설을 단지 추리소설로만 규정짓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 소설은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다.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어떠한 장르적 상상력도 규제 없이 들어갈 수 있다. 독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써서 어떤 카타르시스나 경외감에 빠뜨리게 하는 것- 이 오락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이 가진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본다.
문학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다. '코즈믹'만큼 그 본질에 적합한 작품도 드물다. 때문에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혁신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 소설을 읽고 호불호를 느끼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가치를 지닌다. 1200개의 밀실 살인, 잭더 리퍼의 현신이라 칭하는 재키 더 리퍼 연속 토막 살인 사건(심지어 잭더 리퍼 사건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헤이안, 에도 시대에 있었던 연속 밀실 살인 사건까지- 이 어마어마한 모든 범죄 사건의 '핵'을 꿰뚫어본 일본 탐정 클럽 최고의 탐정 쓰쿠모주쿠는 이렇게 말한다.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이 모든 현재, 과거의 사건은 모두 동일범의 짓입니다. 진범은 한 명입니다! 수수께끼 따위는 없어요. 있는 것은 논리적인 해결 뿐입니다.
일본과 영국,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 이 전대미문의 범죄 금자탑- 그 꼭대기에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범인이 단 한 명의 동일범이라고 말한다. 과연 누가 범인이고, 그는 어떻게 이 같은 우주적 범죄를 가능케 했을까?
덧붙이는 글 (약 스포)
해결편에서 상상도 못할 대 반전이 터진다. 이 반전의 충격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에 필적한다. '그것' 말고는 애초에 어떤 진상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소설은 세계관 자체가 가지는 모호함은 있으나 그 세계관 위에서 일어난 '사건 해결' 자체의 모호함은 없다. 그 모든 밀실 살인은 논리적으로 격파 당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고 책장을 다시 넘겨보면 모든 것이 작가의 복선이었고, 페이크였고, 절묘한 서술 트릭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틀림없이 이 해결편 자체도 굉장한 논란과 호불호에 시달리겠지만, 그래도 이 엄청난 대 밀실 살인 사건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작가의 대담한 발상과 엄청난 상상력에는 찬사가 나온다. 니시오 이신이 괜히 '신'으로 추앙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