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 씨엔씨미디어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본 영화지만 리뷰를 지금에서야 올리네요~


이 영화는 특히 주연 여배우 구로키 히토미(천리안에서 무척 카리스마 있게 등장한 여배우)의 살아있는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천리안때부터 제가 좋아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나이가 40대인데 굉장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며~~ 게다가 모델 출신인지 키도 엄청 크더군요~~
더불어서 아역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해 보자면 딸 이쿠코 역, 귀신 미츠코 역 두 꼬마 애들 모두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이쿠코 역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꼬마 여자애였는데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좋은 연기란 튀는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캐릭터 속에 완전히 스며들어 연기를 하고 있다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연기가 정말 좋은 연기지요)
그리고 미츠코 역을 맡은 여자애 역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귀신 꼬마애 하니 생각나는데 작년에 개봉된 한국 공포영화 '폰'에서도 귀신들인 꼬마애가 한명 나오죠. 미츠코는 극중에서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시종 침묵으로 일관합니다.(마지막에 딱 한마디 하는데 굉장히 오싹하면서도 왠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카리스마란 굉장했습니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폰의 여자애는 굉장히 오버를 하며 나 무섭지,를 강조했었지만 조용한 미츠코가 정색을 하고 눈이라도 한번 흘기면 기겁을 하며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아역들의 능력 보다는 전적으로 감독의 능력이라고 해야겠지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스즈키 코지의 동명 소설 '어두컴컴한 물밑에서'를 '링'의 명콤비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영화화 한 것이지요. 그래서 굉장히 궁합이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즈키 코지의 소설을 가장 영화로 잘 옮기는 사람이 나카다 히데오 일 것입니다.

또한 히데오 감독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호러계의 대가 입니다.(이미 헐리웃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지요~)

검은 물밑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괴담이야기 입니다. 식스센스처럼 기막힌 반전도, 링 처럼 기발한 스토리 전개도, 큐브 처럼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없습니다~

실종된 소녀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에 불과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평범한 스토리를 가지고 흥미롭게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야 말로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쾅쾅 울리는 사운드는 거의 없습니다. 조용히 물 흐르듯이 흐르는 소름끼치는 배경 음악 위로 열린 문틈, 좁은 엘리베이터, 혹은 비오는 거리 등에서 슬그머니 스쳐 지나가는 유령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인간이 어느 순간 진짜로 손에 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해 지는지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듯 해보였습니다. 주변의 소리와 일상의 사건들을 조합해서 미궁같은 두려움을 서서히 뽑아냅니다. 관객들이 어느 순간 긴장감이 극대치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는 바로 그 순간에 상상 속에서 거대하게 부풀려진 공포의 실체를 단 한번 터트리며 결정타를 날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짜집기 스토리에 사운드의 기교로만 얼룩진 국내 호러물에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좀 밋밋할 수도 있겠지요~

공포란 뭔가 거대하고 흉포한 인상을 풍길때 오히려 비대하게만 느껴지는 법이지요. 그래 저거 정말 공포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 이미 그것은 공포가 될 수 없습니다. 나 귀신이야, 하는 느낌이 팍 들게 되면 그 순간 긴장감도 팍 떨어지게 마련이니까요.

누구라도 일상 속에서 경험 해 보았음직한, 이를테면 한 밤중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우리는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진정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공포도 일상의 세심한 관찰과 인간 심리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가 필수적인 것이지요.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외국의 거대 슬래셔 무비만을 쫓다가는(혹은 성공한 유령영화들의 모티브를 흉내내려고만 하다가는) 매니아들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요~!

이 영화는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불행과 그것이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참담한 비극을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이 공포는 동떨어진 세계의 악마나 살인마 따위가 아니라 조용한 아파트(너무나 조용해 인적이 거의 끊긴듯한)가 어느 순간 위령제를 치루어야 할 지옥의 온상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악몽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공포감은 우리들의 불안한 영혼 깊숙이까지 스며들수 밖에 없는 진짜 공포가 되는 것이지요~~

이쯤에서 결론 짓도록 하지요.

저는 검은 물밑에서에 별 네개 정도를 주고 싶습니다. '링' 같은 불멸의 걸작은 아니더라도 탄탄한 구성과 적절한 공포연출이 잘 조화를 이룬 꽤나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검은 물밑에서는 헐리웃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완벽한 일본 적인 공포라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유령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식스센스'나 '디아더스'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며 귀신영화의 교과서인 '엑소시스트'를 흉내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이는 탄탄한 원작 스토리가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지만 감독만의 독보적인 공포철학이 확고하였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겠지요. 역시 대가 다운 솜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거의 없었지요. 있다고 한들 앞으로도 물을 소재로 이만큼 잘 만든 공포영화는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네요. 무섭고 감동적이며 긴 여운을 주는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였습니다.

(끝으로 몇 마디 더, 영화는 원작 소설과는 다른 면이 많습니다. 그러니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시는 것이 좋을 듯싶네요~~~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쾅, 하고 물이 쏟아지는 장면은 공포영화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명장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가 슬프면서도 암담한 느낌의 공포감 때문에 오랫동안 가슴 한 쪽이 먹먹해 지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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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영화 보았는데요.
무섭기도 하면서 몹시 슬프고 그랬습니다.
심장이 깜짝 깜짝 내려 앉을 정도로 놀라는 장면은 없었습니다만...

교수님의 리스트와 서평 대단하고 멋지시네요.
전 호러물중엔 특별히 뱀파이어류 ^^; 만 좋아해서 입맛은 좀 짧은 편입니다.

또 구경 오겠습니다.
^^

살인교수 2005-08-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정말 멋진 영화죠~! 나카다 히데오, 참으로, 공포영화를 제대로 잘 만드는 감독 같습니다~! 구로키 히토미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아역 배우들도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었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