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찬란의계절_봄

비오는 날, 대청소를 했다.
남편의 빈자리는 평소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거슬릴 때 도드라진다.

비오는 거리를 보려고 유리창을 열었더니
유리창의 얼룩이 마음의 얼룩처럼 느껴져
걸레를 들고 닦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배수관 청소를 하고
그러다가 욕실도 락스로 박박 문질러 닦고
베란다에 나가 수국이 필 기미가 보이나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년생 수국은 봄에 스스로 핀다.
물을 잘 주지 않는 주인을 만났음에도
봄에는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색채로 피어난다.

화분에 새싹이 돋은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너 피어나기 위해 겨우내 흙속에서 꿈을 꾸었겠구나‘

갓 올라온 새싹에서 봄향기가 솔솔 느껴지니
새삼 나를 덮고 있는 우울의 장막들이 걷히는 듯했다.

겨울은 꿈을 꾸기 좋은 계절이다.
봄이 꽃을 스스로 피우듯
봄에는 사람의 꿈도 자라는 계절일테다.

하지만 46년째 꿈만 꾸고 살아가는 기분은
형벌처럼 여겨질 때도 있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은
이제 위로도 되지 않고
때론 나를 옭아매는 설움이 되어
몸을 까맣게 태운다.

나의 겨우내 잠도 그렇게 끝났으면 좋겠다
수국이 매해 긴 침묵에도 홀로 화사히 피어나듯이
내 봄도 수국처럼 찬란하기를

비가 그리움처럼 내리는
베란다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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