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 인류 고전 15권에 묻고 스스로 답하다
박병기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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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책을 읽기 위한 ‘삼독법’을 제안했다. ‘정독과 초서와 메모하는’ 읽기는 고전을 읽는데 더욱 필요한 방법이다. 고전은 꼼꼼히 읽지 않으면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데다가 옮겨 써서 읽는 초서도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 강조하였다. 거기에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도 중요한 읽기의 과정이라 여겼다. 책을 읽는다는 것조차 다산은 정성을 들여 읽었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책 읽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며 활자들의 과잉 생산으로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는 다산의 삼독법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면 아마 독서인구는 더욱 줄어들 터이다. 그러나, 고전은 어쩔 수 없이 삼독법으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꼼꼼히 읽고 초서라도 하며 메모라도 하지 않으면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을뿐더러 깊이에도 다가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또 하나 첨한다면, 삼독에 독자의 실천적 경험이 깃들여져야만 고전은 삶에서 비로소 철학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대학에서 윤리학 교수를 지냈고 윤리 저서를 여러 권 펴낸 이력의 작가이다. 불교철학원에 공부하여 금강경이나 수심결, 격몽요결, 장자, 도덕경, 논어를 비롯하여 다종교 시대에 맞는 꾸란의 해석과 신약성서 편,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플라톤 , 칸트에 이르기까지 고전 15편을 통해 핍진한 삶의 철학을 들려준다.

B(Birth 탄생) 과 (Death 죽음) 사이에는 C(Choice 선택)가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모든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 선택들이 모여 현재라는 삶을 이룬다. 그러나, 삶에는 불가항력적인 면들도 존재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나는 화재로 인한 참사와 예고치 못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나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불귀의 객이 될 수도 있는 잠재적 죽음의 공포를 현대인들은 누구나 안고 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품고 일상의 쳇바퀴를 매일같이 돌려야 하는 현대는 너무도 복잡하고 다층적이고 다변화되어 기존의 윤리와 도덕의 기준으로는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 전반의 분위기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막 한 가운데서 바늘 찾기처럼 무모해보이기도 하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인간적인 것들은 급격히 쇠퇴해가는 이때 고전의 쓸모는 아마도 '가장 인간적인 것'의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삶에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존재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유일무이한 능력이며 고전으로 그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최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으로 사회 전반이 시끄럽다. 그 운동을 보면서 새삼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든 상징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깨닫곤 했다.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영역의 집단들, 인간문화재부터 연극단장, 대중으로부터 신뢰가 두텁던 연기자들의 성추문은 그야말로 큰 충격을 안겨준다. 이들은 각종 영역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이들로 그들의 말 한마디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권력의 최고봉에 있던 이들이었기에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남성들에게 상징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비투스가 얼마나 반사회적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아비투스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갖게 된 몸의 습관 같은 것들을 의미하고, 그 몸이 마음과 분리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곧 마음의 습관이기도 하다. 상징 폭력은 그런 아비투스와 힘의 차이에 기반을 두고 다른 아비투스를 지닌 힘없는 사람들에게 행사하는 언어폭력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p115) 이런 상징폭력의 특징은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무신경한 반면,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상처가 오래 깊이 간다는 점이다. 이번 미투 운동으로 사회에 퍼져있는 힘 있는 자(남성)의 폭력에 대한 각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전이 철학적 물음을 품게 되면 정치적이 된다. 여기서 정치라는 말은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토대를 말함이다. 최고의 삶은 정치 공동체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삼독과 작가의 경험이 더해진 맛깔난 철학서였다.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고 있는 부평초 신세의 우리에게 ‘좋은 삶’의 지혜를 기대해도 좋은 책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수다원이라는 말은 ‘세상의 흐름을 뛰어넘는 사람’ 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참된 수다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금강경 「일상무상분」

그러므로 문득 깨침과 지속적인 닦음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깨침이 늦게 오는 것을 걱정하며, 혹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 생각을 알아차리면 곧 사라진다.-『수심결』

절망이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라’라는 자본주의의 명령이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서민층을 먼저 공략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과 갑작스런 수명 연장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긴 노년을 견뎌야 하는 노년층의 절망을 부추기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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