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영화
#나를위한국가는없다

동해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어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남철우, 류승범이 열연했다. 류승범의 연기는 이제껏 보아왔던 연기와 다를 정도로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북한어의 완벽한 사투리와 억양으로 더욱 실감나게 북한인으로 보여진다.

영화는 북한의 어부 남철우가 그물이 엔진에 걸려 고장이 나게 되자, 남한에 표류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때 남철우가 간첩인지 일반인인지의 감별이 우선 포인트이다. 이 감별은 물론 정확하지 않다. 간첩이라는 전제하에 심문하는 조사관은 자신의 아버지가 6.25때 빨갱이들에게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사람을 빨갱이라 부르며 가혹한 고문을 한다. 군사기밀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배 엔진이 다 탔다는 이유로, 몸이 근육질이라는 이유로, 남철우는 이미 간첩이 되어 있었다.

공산국가 VS 자유국가

랑시에르의 자발적 복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멍에를 지고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도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매일아침 ‘우리의식솔‘이라 쓰여진 김정은과 김일성 수령의 사진을 보고 눈을 뜨는 남철우의 일상에서도
감시와 억압은 매우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그런 남철우에게 남한의 자유는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자신이 가는 곳마다 비춰지는 CCTV의 존재, 조사관의 가혹한 고문, 휘황한 네온사인 뒤 후미진 골목에서 이뤄지는 여성폭행은 남철우의 눈에는 전혀 다른 감시와 억압의 공포로 다가온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다.

남철우의 정직함과 우직함을 응원하고 함께 해주는 경호원청년과 남철우는 무조건 간첩일 수 밖에 없다는 조사관의 힘겨루기에서 결국 남철우는 간첩이 아닌 것으로 결정이 난다.

국정원에서는 남철우에게 전향을 하면 돈과 결혼과 집을 준다고 회유를 하지만, 남철우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조국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자유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국정원에서 남철우를 서울도심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았을때 자본은 악의 존재라는 이유로 한참이나 눈을 감고 걷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계속된 회유에도 북에 돌아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못하자, 일주일만에 북으로 돌아가게 된 남철우.

북으로 돌아가는 날,
자신을 괴롭혔던 조사관을 재떨이로 패고 똑바로 살라는 일침을 가하고 돌아서는 철우에게 조사관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애국가 1절을 부른다. 자신의 색깔론은 오로지 애국심의 발로라는 것처럼, 태극기부대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수리 된 배에 올라 남한에서 준 옷을 모두 집어던지고는 팬티바람으로 배를 타고 떠나는 남철우의 뒷모습은 뒤도 돌아보기 싫은 혐오감이 읽혀질 정도로 단호하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화환을 목에 걸고 조선인민민주주의 만세!!!를 열창하며 땅을 밟는 순간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철우는 보위국에 이끌려 남한의 조사관보다 더욱 혹독하고 악랄한 고문을 받는다. 고문을 받던 중, 위대한 영웅이라며 방송에 나가는 사진을 찍느라 눈물이 가득고인 얼굴로 억지웃음을 짓는 남철우 영웅동지의 모습에서 말못할 고통과 회한이 전달된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은 남철우의 변에서 비닐에 쌓여있는 달러를 찾아온 보위국 사람들은 남철우에게 달러는 평생 비밀로 해줄테니 풀어주겠다고 한다. 대신 달러는 자기들이 쓰겠다고.

위대한 남철우 영웅동지, 자본의 유혹을 물리치고 돌아온 영웅동지 남철우는 변에 섞인 달러덕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남철우의 모습에는 자신을 지탱해주던 모든 신념과 믿음이 빠져버린 초췌한 몰골이다.

아내는 보위국에서 당한 채찍질로 뽀얀 살결에 빨간 생채기가 군데군데 나 있고 남철우는 아내의 노력에도 성불구가 됨 사실을 알게 되자 둘은 벌거벗은 몸으로 끌어안고 운다. 세살배기 딸아이의 머리 위에는 우리의 식솔이라며 김정은과 김일성이 그 가족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를 위한 국가는 없다

남철우가 경험한 전혀 다른 모습의 감시와 억압은 국가와 개인의 극단적인 형태를 말한다. 국가가 감시와 억압의 주체인 나라에서 자란 남철우. 태어나면서 억압되지 않는 자유는 보장되지만 온라인의 발달로 개인에 대한 감시는 강화된 남한의 시스템을 남철우는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공산국가의 억압과 같은 것으로 본다. 남한의 CCTV와 휘황한 네온사인, 빠른 정보는 오히려 남철우에게는 엄청만 공포였던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통해 분단국가인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일깨우게 된다. 나를 위한 국가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 개인의 정신을 믿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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