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인문
#누구나_자신을_파괴할_권리가_있다
가끔 자신만이 옳다고 강요하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다. 노벨 경제학자 수상자인 대니얼 커너먼은 우리의 생각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의 이면에 존재하는 타당한 이유,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하는 가능성을 떠올리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는 의식적 주체로서, 다른 여러 가지 부분들에 의해 좌우되는, 오직 ‘일부’에 불과하다. 선택과 결정 또한 우리의 경험에 의한 무의식에 의해 이뤄진다. 우리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그렇기에 어떠한 일을 판단할때는 좀더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 간주하여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이기적일 뿐 아니라 스스로 심각한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인간의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깨뜨릴수록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다. 마치 싱클레어가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돌아볼 줄 아는 것도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나는 이제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도 타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노력하지도 않은 채 떠나보내는 인연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이켜보면 그렇게 깨진 관계와 인연들이 부질없는 나의 자존심과 고집에 의한 것임을 깨닫곤 하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없이 세상과 나 사이 벽을 높게 쌓으며 안으로 안으로만 침참해 가게 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은 늘 사랑이라는 열린 이름으로 다가온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랑은 가능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혼자 남겨져도 사랑은 찾아온다. 차디찬 질감의 한파를 몰고오는 봄의 노크에도 기어이 녹고 마는 은빛의 강가에서 겨우내 쌓은 벽도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을 기대하며 지금의 추위를 견뎌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타인에게 삶을 강요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오지랖에 불과하다. 누구나 자기 삶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프랑수아 사강이 말하였듯이 강요보다는 사랑의 언어가 우리들에게는 필요하다. 얼음은 차가운 바람에 녹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에 자신의 속살을 내보이며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