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_납치하다 #류시화
#인문 #찰스_레즈니코프
한동안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빠져 읽었는데 신간 [시로 납치하다]역시나 너무 좋다. 문장마다 감동으로 스며든다. 이름 모르던 위대한 시인들의 삶과 쓴다는 것의 의미를 반추해본다.
쓰기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의 사투를 벌이는 일임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나는 지쳤다.
이제 나의 일을 해야 할 날이
하루 더 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나의 힘이 되돌아왔다.
그래, 밀물은 하루에 두 번 차오르지.
- 찰스 레즈니코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류시화 옮김)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 부모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이민 온 세대였다. 아버지는 모자 공장을 운영했지만 곤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쓴 소년은 시인 하이네와 괴테가 법률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로스쿨에 입학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뉴욕주 법정 변호사로 취직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모자 판매와 재판 기록 정리로 생계를 이어 가며 시집을 자비 출판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대공황이 닥치고, 가업인 모자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직장도 잃었다. 주급 25달러를 벌기 위해 매일 시간제로 일해야 했다. 폴 오스터가 『굶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그를 예로 들 정도로 늘 허기가 졌다. 그럼에도 계속 자비 출판으로 시집을 냈다. 독자도 비평가도 무관심했다.
그렇게 이 무명 시인은 60세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를 썼다. 생계비 버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물 먹은 솜처럼 피곤했었지만, ‘하루에 두 번’ 밀물이 차오른다는 걸 믿었다. 어떤 상황에도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가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리라는 걸 알았기 떄문이다. 백화점에서 구매 담당자에게 삼품 견본을 보여 주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시를 썼다.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상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인 찰스 레즈니코프의 생애(1894~1976)이다. 그의 사후, 자비 출판했던 시집들이 꾸준히 재출간되고, 객관주의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확고해졌다. 자신의 인생 자체를 객관화시켜 시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객관주의 시인으로 불리지만,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의 삶인데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짧은 시이지만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없다. 그는 삶의 헛된 희망에도 속지 않았지만 섣부른 절망해도 속지 않았다. 그렇다 ‘하루에 두 번’ 틀림없이 밀물은 차오른다. 그때 우리 영혼은 비상하고, 의지가 솟고, 짧은 시간이지만 가슴 뛰는 일에 몰입한다. 평생을 무명 시인으로 보냈으나 레즈니코프의 시에는 분개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생계비를 버느라, 그리고 ‘밀물이 들어올 때’는 창작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폴 오스터가 지적했듯이, 레즈니코프에게 있어 시는 세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