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 라는 시를 쓴 윌리엄 블레이크는 남동생이 폐결핵으로 죽었을 때 ‘기쁨의 박수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났다. 상상을 좋아하고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볼 수 있었으니 젊었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종종 미치광이나 몽상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그의 시는 예언자적 시인으로 극찬을 받게 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토록 다르다. 누군가의 천재성은 생전에는 정신병자였을지라도 사후에 그의 진가가 보석처럼 빛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의 평가는 한 사람의 삶을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늘 현재만 살 것 같지만 고귀함이 깃든 정신과 삶에 대한 평가는 현재만의 평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해서 다른 이들의 평가도 그러할 것이라 판단하는 건 자신의 경험이 그만큼 편협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버드 대학을 나온 소로우가 자본주의에 물든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월든 호수에서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을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그 시대에는 어리석은 일로 비춰져 조롱거리와 차가운 시선들을 견뎌내야만 했다는 것을 보면 남과 다른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자체는 매우 힘든 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남과 어느 정도가 같고 어느 부분이 다를까. 다른 것을 같은 척하고 살아가지 못하는 나로서는 누군가의 평가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초록은 동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치광이색으로 사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허나 그러한 용기조차 없어 그저 범인 凡人에 머물러 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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