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_산다는_저주
#자본주의사회에서_늙음이란

상품가치가 떨어진 제품들은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물건처럼 상품화 된다. 소비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듯이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인간 역시도 시장경제의 중심에서 시장 변두리로 분리 수거되듯 버려지는 것이다.

사회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가는 기분, 이런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늙음일지도 모른다. 지혜로운 사람은 도처에 불행과 비극이 도사린다는 것을 이해한다.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으며,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할 수도 있으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본주의시장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교환 가치가 떨어진 노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두가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스신화에는 영원히 죽지 않아 불행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시빌레. 훗날 시빌레는 무녀를 통칭하는 말이 되었지만 이름의 유래는 아름다운 한 여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신 가운데 유난히 여복이 없던 아폴론은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일단은 들이대고 봤다. 아름다운 시빌레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처럼 자신의 구애를 받아만 준다면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한다.

인간이었기에 오래 살고 싶었던 시빌레는 저 바닷가의 모래알 수만큼 살게 해달라 말한다. 그러나, 이 말에는 함정이 있었으니 그냥 오래 살고 싶다는 말만 한 것이다. 젊음이 쏘옥 빠진 죽지 않는 삶이란 축복이었을까, 형벌이었을까.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시빌레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하지만, 아폴론은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시빌레의 소원만은 들어준다. (아폴론은 뒤끝도 작렬이다). 사랑을 거절한 댓가로 시빌레는 노쇠하고 쭈글쭈글한 육체로 오래오래 살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매일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폴론은 늙고 병든 그녀의 기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된다는 것. 이것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필연적인 일이지만 건강하고 한창일 때에는 누구도 고민해보지 않는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삶의 중심에 있을 것 같고 늘 현역일 것만 같기에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며 살아가다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쇠해 가는 육체의 변화를 바라보는 일은 슬픔이자 고통이다. 그렇게 지난하게 이어지는 인생을 살아내는 일, 그것이 삶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것, 그건 분명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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