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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와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

삶은 색과 계로 이루어진 촘촘한 바둑판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개인의 욕망에 충실하려는 ‘색‘과 남에게 그럴 듯하게 포장하려 애쓰는 규범의 ‘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색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계의 경계선, 이것은 영화 『 색 계 』를 보면 두 간극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대학에 들어간 새내기 왕차아즈(탕웨이)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지만 연극무대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연극동아리에 들어가자 공산당원이기도 한 그들은 왕차아즈에게 친일파로 악명이 높은 ‘이(양조위)‘를 암살공모한다. 왕차아즈의 미모를 이용해 ‘이‘와 접선하여 살해하려 한 것이다. 연극단원들은 왕차아즈에게 ‘이‘의 모든 정보를 외우게 하며 연기할 ‘막부인‘을 위해 왕차아즈에게 섹스조차 가르친다. 이때까지 왕차아즈는 자신의 욕망과는 무관한 그저 타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계의 사람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든 것을 연극으로만 생각하고 오로지 악명높은 친일파를 죽이는 것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었던 왕차아즈는 그렇게 ‘이‘를 암살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지만 어리숙한 이들의 아마추어 작전을 눈치를 챈 ‘이‘는 상해로 가버린다.

이후 4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행이 기회가 찾아온다. 왕차아즈는 돈많은 막부인 행세를 하며 ‘이‘의 부인과 마작을 즐기는 사이가 되면서 드디어 ‘이‘를 만나게 된다. 왕차아즈와 ‘이‘의 첫 만남이지만, 둘은 첫 눈에 은밀한 눈빛을 교환한다. 이때까지도 왕차아즈는 자신이 색보다는 임무에 충실한 계의 역할만 생각하고 있다.

은밀한 첫 만남, 드디어 이들은 계의 경계를 풀고 자신들의 욕망에만 충실한 색의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경계를 넘어서 색의 세계로 들어서자, 둘의 황홀한 첫 정사가 시작된다. 거칠고 폭력적인, 강압적인 행위로 막부인을 굴복시키는 ‘이‘에게서는 왕차아즈의 영원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만 같다. 실신 직전까지 가서야 행위를 멈춘 ‘이‘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민당의 고위 관리로 공산당을 피해 도망다니며 늘 암살의 위협을 느끼던 ‘이‘에게는 왕차아즈라는 여인은 규범과 이성에 길들여져 있었던 계의 세상을 깨뜨릴 정도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누구나 의심하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무표정한 ‘이‘의 얼굴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자신이 항일단체 조직원으로 연기를 하는 것인지 진짜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몰랐던 왕차아즈는 마지막 정사에서 ‘이‘보다도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함으로 ‘이‘를 사랑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색과 계 사이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결국 색에 굴복해버린 계 사이에서 왕차아즈는 한없이 흔들린다.

디데이가 코앞으로 다가온날, ‘이‘는 왕차아즈를 데리고 나가 쇼핑을 한다. 보석점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며 미소를 짓는 ‘이‘를 본 순간, 자신이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왕차아즈는 조직원들의 암살로부터 그를 지켜낸다. 조직을 배신하면서까지 그를 살려내려한 그녀의 계의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이 욕망(색)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무채색의 계에서 살았던 왕차아즈에게 사랑이란 색이 덧입혀지게 되자 세상은 크게 흔들린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경험이라는 풍크툼이란 투명한 아름다움이 가슴에 스며들자, 비록 상처를 입을지라도 목숨을 걸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경험은그녀 전 생에 유일한 혁명이다. 존재의 증명, 그것은 나 아니면 안되는 사랑을 만났을 때 눈뜨는 오롯이 자신만의 풍크툼이다. 계의 세상에서 쌓아올린 망상의 벽돌은 사랑이라는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린다.

모두가 처형당한 후, 보고를 받으며 그녀가 남긴 다이아반지를 바라보는 ‘이‘의 표정에는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감돈다. 그녀의 희생에 절망하기보다는 사랑한다는 자신만의 풍크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숭고함이 도사리는 고독감이다.

욕망이라는 것은 억압할 수록 강해지는 색이고 계는 살아가면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의 세계다. 누구나 색을 갈구하지만 계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욕망하고 싶은 세계, 그것은 색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왕차아즈가 보여주는 사랑에 있다.

<색,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웠던 세상이,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었을 때야 비로소 그 투명한 속살을 보여준다.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상처, 그렇게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그것을 롤랑 바르트는 ‘풍크툼’이라고 불렀다.(시네필 다이어리) 오로지 개인에게만 열어주는 세계의 비밀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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