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밑줄 #브루스커밍스의_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현재도 그렇다). 1991년 소련 자체가 잊힌 뒤 평양에 자리 잡은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도 분명히 무너질 것이라는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이러한 이해만이 1950년 6월 이전에 남한에서 사라진 10만 명의 생명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싸움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최초의 전쟁 철학자인 투키디데스가 동족상잔의 전쟁에 관하여 무슨 말을 해야 했는지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책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글귀일 ˝전쟁은 난폭한 교사이다˝라는 문장은 케르키라의 내전을 다룬 데서 나온다.

전쟁은 난폭한 교사이다. 그리하여 도시들에 잇달아 내란이 발생했다. (중략) 만용은 충성심으로 간주되고, 신중함은 비겁한 자의 핑계가 되었다. 절제는 남자답지 못함의 다른 말이 되고,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엇 하나 실행할 능력이 없음을 뜻하게 되었다. 충동적인 열의는 남자다움의 징표가 되고, 적에게 음모를 꾸미는 것은 정당방위가 되었다. 과격파는 언제나 신뢰받고, 그들을 반박하는 자는 의심을 받았다.

이 인용문은 한국의 내전에 꼭 들어맞는다. 상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 전쟁에 말려든 한국인들의 마음에 마치 피를 뽑는 의사처럼 지금까지도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설명해준다. 한국전쟁을 ˝모든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북한에서는 여전히 감옥에 갈 일이고, 이제는 (그리고 마침내) 민주화된 남한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이 인용문은 또한 미국 남북전쟁에도 적합하다. 남북전쟁은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치른 모든 전쟁 중에서 가장 큰 참화를 초래했지만,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대다수 미국인은 전쟁이 전 국토를 휩쓰는 것이나 형제끼리 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브루스커밍스의 한국전쟁』중에서



한국전쟁이 남겨준 것은 한(恨)이라는 감정이었다 . 한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런 내전의 고통이 깊이 옹이 지어 생긴 감정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잔인했던 모습을 한 이들이 미국인도 아닌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들이었다는 것은 묘한 충격을 전해준다.가장 악랄하고 잔인했던 모습들을 기억하는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전쟁의 무늬를 그려간다. 지금도 너무나 극명하게 갈라져 있는 이념대립은 한이라는 감정을 소환하여 각인시켜준다.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의 끝자락에서 기억을 돌보며 망각하지 않으려 하는 한 학자의 심도 깊은 기록이 얼마나 갚진 문제의식인지, 우리들 모두가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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