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삶 - 민들레문학상 작품집
민들레모임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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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모임은 20156월에 있었던 민들레 문학상 수상자들의 낭독회를 준비하며 결성됐다고 한다. 매달 한 번 만나 서로간의 낭독회를 가지는 민들레 모임은 거리의 문인들이다. 아침 뉴스에는 서울시내 노숙자들이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는 보도를 들었다. 노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현대사회 누구나 거리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많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현대인의 삶이란 불어오는 바람에 실타래가 꼬여버리듯 언제 꼬일지 모르는 바람을 안고 사는 것일 테니 말이다. 서민들의 비상구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고통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만 가는 계절에 만난 민들레 모임의 오로지 삶은 한 번 쏘아진 생이라는 활시위는 다시 되돌아오는 일이 없이 얼마나 잔인하게 떠나가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핍진의 문학이다.

 

민들레모임 오로지 삶,

  

엄마가 가끔 말하는 엄마의 고향집 같이 가난했지만 행복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는 집을 내가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와 우리 식구가 살고 있는 집, 쉼터라고 불리는 집, 어디서 바퀴벌레 시체가 발견될지 모르는 집, 방충망에 구멍 세 개가 난 집에서 나는 행복하다.

 

사람이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란다. 비록 두 다리는 잃었지만 그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스스로 배웠다.

 

민들레 문학상 수상작들인 작품 전반의 시와 산문은 거리의 문인들의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오로지, 이라는 제목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리의 문인들에게 닥쳐진 현실의 광풍은 매몰차다. 빚독촉에 시달리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삶의 쉼터에 둥지를 튼 사연과 갑자기 찾아 온 병마에 시달리다 다리를 절단하고 이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방탕한 삶을 살다 쉼터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면서 맞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 이혼 후 쪽방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삶의 터닝포인트들이 기구하다 못해 가슴 적적한 날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있는 생의 아슬아슬함에 눈이 시리다. 시의 제목이 비춰지고 있듯이 오로지 삶을 관통하는 주제는 생이다. 삶이라는 글자가 사람이라는 글자를 축약 한 모습인 것처럼 이 시집에 담긴 생은 사람 그 자체를 의미한다. 길거리라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내려간 이들의 처절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에서는 그들에게 닥친 삶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슬픔이고 아픔일지라도 오로지, 삶이기에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시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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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억이었던 놈이 담배 한 개비에도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잠시 드디어 노숙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구나.”

일단 서울역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지금도 그곳을 지날 때면

그때의 철부지 짓들이 생각나곤 한다.

죄를 몰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좀 더 나이를 먹고

술에 찌들고 삶의 무게에 치받쳐

거리를 떠돌며 사는 지금에서야

아직도 그 사람은 기다리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무너지기 전의 나와, 헤어진 가족과,

사라진 나의 집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난다.

나로 인해 가슴 아팠을 부인과 두 딸을 생각한다.

그래서 꼭 나의 집을 갖고 싶다.

어떻게든 희망의 의지를 다독이며 살아볼 작정이다.

그 꿈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신발 끈을 묶는다.

 

 

그때의 내가 보입니다.

그때의 마음이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그 들판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친구들도 다 보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뛰어놉니다.

내 마음은 개구리 같습니다.

내 마음은 메뚜기 같습니다.

 

너무 긴 시간을 돌아온 것만 같다. 하지만 멀게 돌아온 시간속의 아픔은 그저 허비한 게 아닐 것이다. 수십, 수백 배만큼 양질의 거름으로 마음의 양식이 될 거라 믿는다. 이런 마음이 내 정원의 중심에 있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게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주어진 것이 풍족하거나 넘치는 이는 참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길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에 오늘도 감사하며, 또 그렇게 배움으로 살아간다.

 

노숙자로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지난날의 회환들은 시마다 절절히 드러난다. ‘연봉 1억을 받았던’, ‘죄를 몰랐던 그 시절’, ‘술에 찌들고 삶의 무게에 치받쳐 거리를 떠돌며 사는 지금에서야’, ‘무너지기 전의 나’, ‘그때의 내가 보입니다.’와 같은 표현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며 후회와 현실의 비극 사이를 오가는 숨 가쁜 그네를 탄다. 그래도 늘 마지막에는 민들레의 꽃말처럼 희망과 행복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숙명인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생은 계속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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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 시읽기와 미시적 시읽기는 시 자체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지만, 맥락적 읽기는 시인의 삶과 배경으로 탄생한 시의 의미를 분석하는 일이다. 민들레 문학상은 노숙인들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한국문학예술위원회에서 크라우드 펀딩형식으로 만들어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하여 노숙자들 대상의 공모전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숙자란 사회 극빈민층이다. 허나, 이들의 삶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고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가져야만 개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 그들에게 닥친 생의 활시위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지나치게 잔인했을 뿐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승수의 방과 일의 작품에서는 노숙자가 되기 전의 삶이 잠깐 소개된다.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고 애엄마는 반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사연이 소개된다. 일용직을 하던 친구들은 하나 둘씩 죽고 남겨진 자신의 몸뚱아리에 뇌졸중이 찾아오자 잔인한 삶에 가슴을 베이지만 그래도 그는 먼저 간 친구에게 그곳에서는 부디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길 바란다. 김채현의 구멍이 난 집은 매일밤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한 가족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쉼터에 머무는 동안의 짤막한 행복을 꿈꾸는 장면이 그려진다. 노숙자들의 삶은 진철이라는 시에서도 절절히 배여난다. ‘진철이가 갔단다 집없는 진철이가 갔단다라며 저세상에서는 술 먹지 말고 잘 가소라며 노숙자들의 죽음의 가치를 떠올려보게 한다. 버거씨병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김홍기의 희망의 날갯짓에서 보여주는 생의 핍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처절하다. 영등포 쪽방생활을 그럭저럭 꾸려가지만 장애에 대한 분노와 현실의 암울함은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 내몰고 범죄자가 되어 떠돌이 신세를 지내다가 겨우 둥지를 튼 남대문 쪽방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비치는 햇살의 따사로움이 그에게는 희망의 등대였다. 삶의 밑바닥이지만 그렇게 저마다의 슬픔을 간직한 채 노숙자들은 자신의 생이라는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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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문학상이라 해서 참 예쁜 이름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아름다운 동화나 시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이토록 처절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을 알아야만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고, 늘 절망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으로 읽히기도 했다. 시가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생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주는 핍진逼眞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듯이 지금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한 번 당겨진 생이라는 활시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한다고 닦달만 해댄다. 비록 들판에 피는 흔하디 흔한 민들레이지만 그 얼만은 홀씨처럼 퍼져 사람들에게 희망의 노래로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시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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