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blessing’이라는 영어 단어는 ‘상처 입히다blesser’라는 프랑스어에서 나왔다. 축복은 종종 상처와 고통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삶이 지닌 경이와 아름다움 앞에 무릎 꿇기 위해서는 어두운 동굴의 시간, 심리적 추락의 경험이 필요하다. 많은 영적 치료사들은 그런 인생의 시련을 겪고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와 세상의 신비와 마주한 사람들이다. 너무 밝은 빛 속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두울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때 빛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도 썼다.

‘어둠 속에서 눈은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

-알라딘 eBook (류시화) 중에서


인디언들은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고
말한다.

눈물하니
몇 년전 산에 오르기 시작할 때가
나에게는 가장 슬픈 과거가 아니었을까 싶다.

슬픔이든 아픔이든
나는 타향에서 혼자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했고

모든 것이 달랐고
모든 것이 틀렸던
삶을 다시 배워야 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사랑해서 아내로 사는 일이,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사는 일이
쉬울 거라 말하지 말기를,
이제 곧 내게도 중년의 사춘기라는
갱년기도 찾아올 것이다.

한동안 나는 극도로 우울했고
슬펐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현재를 이겨내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였고
포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생의 문제였다.

신은 결코 모두에게 주지 않는다고 했다.

산에 오르는 것은
내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기위한 수단이었다.

이전투구의 현실에서 살아내기 위해
마음 하나 누일 수 있는 치유의 산길을
오르다보니 서서히 향수병도 치료가 되어갔다.

한 번도 깊이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아픈 시간들이 있다
그 눈물의 시간들은 언젠가 영혼 깊은 곳의
진주가 되어 무지개빛으로 빛날 것이다.

지금의 눈물이 소중한 이유다.

#일상 #어둠속에서_비로소_눈이_보이기_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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