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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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지연이다. 학교다닐 때는 김지연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출석 부를 때 김지연 뒤에 알파벳을 붙여 불러주셨다. 키가 작아 난 언제나 김지연A였고, 나보다 큰 친구는 김지연 B, 그보다 큰 친구는 김지연C 불려졌다. 흔한 이름처럼 나는 흔한 아줌마처럼 살고 있다. 비교적 평온하고 정상인 삶이었다.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할 때까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여느 아줌마들처럼 몸매까지 흔해져 버리니 나는 후져지기 시작했다. 내 뱃속에서 낳아 똥 싸는 모습까지 이쁘기만 했던 자식들은 사춘기가 되니까 뚱뚱해진 엄마를 싫어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 관리를 할 시간적 여유가 도저히 되지 않았고 돈이 아까워 무엇 하나 맘대로 사 본적 없던 나를 아이들과 남편은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공개 수업에서 친구 엄마의 세련됨과 비교를 하며 배 나온 엄마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사춘기 딸들은 내가 살이 많이 빠지고 나니 이제 조금은 가족구성원으로 인정을 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돌만큼이나 내게도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남편과 자식들은 전혀 몰랐다. 그냥 흔한 아줌마들처럼, 자식과 남편을 위한 희생은 보이지 않고 외모로만 나를 평가한다는 자체에 처음에는 너무 서운했다. 여성의 삶에서 자식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전부를 의미했다. 그냥 가족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살이 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상품가치를 제1차 사회적 구성원에게서조차 강요받으며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가 얼마나 매정하고 냉정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이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p46

 

 

나 김지연A는 흔한 이름처럼 여느 보통의 가정처럼 살고 있다. 만약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여성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진액을 아이하나만 사랑하기도 힘든 세상에 남편 뒷바라지에 직장일, 가사일까지 감당하며 짜내는 일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거기에 여성으로서 외모까지 관리하며 살라는 요구는 정말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사회는 과학적으로 진일보하고 있지만 여성인권에 대해서는 점점 퇴보하는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엄마들에게 벌레 같은 혐오의 의미를 붙여 만든 신조어 맘충과 노키즈존의 등장을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는 낯설지 않게 사회 한구석에 꽈리를 틀고 자라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가운데 수많은 김지영이 생겨나고 있다. 그저 보통의 삶을 사는 대한민국의 여성. 그녀 역시도 나처럼 A.B.C로 출석을 불렸을 만큼 대한민국에서 흔하디흔한 이름이다. 너무 평범해서 그렇다할 이력이 없던 그녀는 알 수 없는 병, 빙의가 되면서부터 존재감이 부여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이름하여 그녀의 보고서인 셈이다. 남편보다 수학을 잘했지만 집에서 초등수학 문제집을 푸는 아줌마로 살아가는 김지영의 삶, 그것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김지영을 보며 여성으로서의 김지연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은 참으로 서글프고 씁쓸했다. 여성이라서, 들었던 수많은 모욕감들이 되살아났고 여성이기에 받았던 차별들이 생각나 서글퍼졌다. 하지만 태어나 보니 여성이었고 대한민국이었고 나이 드니 아줌마가 되었다. 별 존재감도 없고, 같이 입사한 남성은 임원이 되었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나는 그저 시다바리 수준의 잡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짤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커피 심부름을 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과 남편 눈치를 보며 하루를 또 버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니까. 나는 또 하나의 김지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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