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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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5.18을 두고 북한군들이 개입된 남한의 폭동이라고도 한다. 지만원의 과학적?인 증거로 폭동이라 주장하는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박사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유아수준의 어휘사용과 억지, 추측이 난무하면서도 과학적이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더 우스운 건 그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무리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무리로 5.18은 다시 폭동으로 둔갑하여 인터넷이라는 바다를 두둥실 떠다닌다. 지만원이 패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유언비어가 떠도는 것은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어야만 하는 잘못된 신념만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그런 경우를 자주 맞딱드린다.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앞장 서서 그 진실을 말하기가 힘든 경우를. 말하면 괜히 엮여서 피곤해 질 것 같고 , 먹고 살기도 힘든데 괜한 일에 목숨 걸게 되는 것 같은 선택의 상황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덜 피곤하고 목숨 걸지 않으면서 안전한 선택을 하려 한다. 


경기도에 사시는 부모님은 박정희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고,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보편적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아주 철저한 보수적인 분들이셨다. 자식이 넷이나 되는 우리집의 명절 풍경은 철저히 보수적이신 부모님들과 이후 성인이 되어 머리가 깨일만큼  깨인 네 명의 자식들과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언제나 부모님은 자식을 이기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어두운 그림자와 공포 같은 것이 부모님께 느껴졌었다. 아마도 그 시대를 겪은 세대들에게 혁명이나 사회의 혼란은 견디기 힘든 시절들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그저 그런 혼란스러운 두려움의 방패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목숨 걸어가며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책으로 민주주의를 스폰지처럼 흡수하게 된 지식인들의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이후 5.18까지 번져가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영초언니]는 몸부림의 선봉에서 청춘을 저당잡힌 채 살아간 여성이다. 저자 서명숙은 영초언니와 함께 한 몇 안되는 조력자였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금생활을 하는 동안의 이야기들이 무엇보다 충격이고 감동적으로 읽혀진다. 고문과 협박,데모하는 이들에게 행해진 가혹한 행위들, 구치소에서의 인권 유린의 행위들을 픽션이 아닌 생생한 목격자를 통해 전해 듣자니 눈물이 책을 적시곤 했다. 


영초언니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영민하던 영초언니와 서울대 천재였던 문화형의 비극적인 삶은 그 시대를 외면하며 살아간 이들을 대신한 십자가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이 올 때 당장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굴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해서 다수는 면죄부를 받기도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진실을 기억하듯이, 영초 언니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이들로 인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진일보 해 왔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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