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시치고는 참 냉소적이다.
하지만 시의 내면읽기도 들어가보면
이 시는 상당한 인문학적 사유의 내공이 담겨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접하다보면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을 토로하는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이나 아픔은
누군가 대신 아파해 줄 수 없는
지극히 개인의 영역에 해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아픔의 무게와
고통의 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내면은 한 단계씩 성숙되어 간다.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한 이들과
자신만이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아픔은 아니다.
정말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고통을 토로하지도 못할 정도의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황인숙은 <강>에서 그런 고통이
'옷장의 나비'나 '찬장의 거미줄'같은
자잘한 일상의 고민일 수도 있고
'인생의 어깃장'같은
심각한 시련과 장애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에 해결해달라고 말하는 대신에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할 것을 명령한다.

'나의 고통'이란 것은
절대로 타인의 위로로 없어지지 않는다.
나 자신이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을 기꺼이 짊어진 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시인과 우리는 이미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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