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일드44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괴물을 깨울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있다면 아마도 전쟁일 것이다.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직후, 베를린에서는 9만여명의 여성이 집단강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숫자는 공식적으로 병원치료를 받은 여성들에 국한되며 실상 훨씬 더 광범위하게 강간이 이뤄졌다. 전승국이었던 소련인이 베를린여성들을 강간과 학살로 광란의 2주를 보내는 동안 그 누구도 그 광기를 제어하지 못했으며, 그 누구도 그들이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전쟁은 이미 모두를 괴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

<차일드 44>는 전쟁이 깨운 인간 내면의 괴물을 끄집어내는 심리 스릴러 영화이다. 스탈린 체제의 구소련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은 전체주의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다.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누군가 살인을 일으킨다는 발상자체를 이들은 '자본주의의 고질병'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살인을 감추기 위해 스탈린 체제의 장교들은 스파이와 나치의 소행이나 정신병자의 일탈정도로 치부하며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지만, 주인공으로 나오는 '레오'만은 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레오는 전체주의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2차대전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워 장교가 되었지만 가슴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레오에게 전체주의라는 독재체제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옷인지도 모른다. 군인들과의 미팅에서 아내 라이사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외쳐대는 모습은 레오에게 닥칠 불운에 대한 복선처럼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스파이를 잡으러 가서는 스파이를 숨겨준 부부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쏘는 부하직원을 질책하기도 한다. 이런 레오의 성품은 전체주의의 억압과 경직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위태로움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철로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시체, 그 시체는 동료의 아이였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천국에서는 살인이란 일어나지 않는다(완벽한 국가에서는 범죄란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사건을 사고사로 은폐하여 하며 친구를 오히려 설득시키라는 명령을 레오에게 내린다.

오열하는 친구의 부인을 보며
'더이상 문제를 만들지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하며 뒤돌아나오지만, 레오의 표정은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한 번의 시험이 지나는 가 싶었더니 다시 내려온 상부의 명령은

'아내를 고발하라.' 이다.

스파이와 내통한 혐의를 받고 있던 아내를 고발하면 레오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오는 아내를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혐의를 부인한다.

독재체제 충성도 테스트였을까? 아내를 고발하지 못한 레오는 모스크바 장교에서 시골 민병대로 좌천되어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친구의 아이처럼 죽은 어린 소년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자 그제서야 의문을 품게 된다.

집단체제 속에서 삶에 의문을 품는다는 자체는 죄악이다. 그러나 이제 레오는 억압과 착취속의 학습된 자아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적인 자아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아내 라이사는 그런 레오가 불안하기만 하다.

"의문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요? 우리 둘 다 죽어요."
레오는
'어차피 죽어있었어.'

이때부터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부와 사건을 파헤치려는 레오와의 끈질긴 싸움이 시작된다.

44명의 살인범, 정체는 놀랍게도 레오와 함께 자란 고아원출신의 남자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인 1500만 명을 죽임(홀로도모로 대학살)으로 발생했던 고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남자. 게다가 레오와 같은 고아원을 다녔던 남자였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해를 하며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고통에 시달려 왔음을 고백하며 레오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남자.

"우린 괴물이야.
전쟁영웅인 너나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없는 나나 괴물인 건 마찬가지야."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전쟁이 남겨주는 참혹함은 인간은 누구나 가슴안에 괴물과 같은 잔인함을 품고 있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참상은 인간을 더이상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데에 있다. 영화는 진실과 허구라는 두 가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구소련의 지배층들이 범죄를 나치인들의 보복이라는 하나의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 다시 또 그 허상이 진실처럼 받아들이도록 함으로 한 세계를 이어나간다.

복직된 레오는 이제 안다.
그 허구의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을,
체제(이념)라는 것은 어차피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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