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 전경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6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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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산에 오르면 가을이 주는 감각들이 피부에 스며드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럴 땐 고독은 덤으로 얻어지는 계절의 감각이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바쁘게만 살다보면 감성은 어느새 황폐해져 삶에서의 감동도 무뎌져만 간다. 나른한 일상에 전경린 소설은 메마른 감성에 부어주는 마중물과도 같았다. 그녀의 문장이 이토록 아름답고 유려했는지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여성의 자의식을 이토록 치열하게 내밀히 들여다보는 소설 역시 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여성에게 금기시 되어 있는 성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불륜이라는 키워드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색,계

욕망은 색이고 규범은 계이다. 이 두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이 어쩌면 중년이라는 나이에 일어나는 지도 모르겠다. 관습과 제도(계)에 안정적으로 길들여진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던 순종적인 여성 미흔이 욕망이라는 색에 눈을 뜨게 되면서 치닫게 되는 격정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물 한 살에 만난 남자, 효경만이 그녀의 전 삶이자 전부라고 믿어왔던 여자 미흔. 모든 여성의 삶이 그러하듯 평범하게 사랑하고 결혼이라는 안정적 제도에 안착하였던 그녀의 삶은  계戒의 세계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타난 효경의 내연녀 정우의 폭로로 인해 그녀의 견고했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흔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고, 완벽한 사랑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정우는 그녀에게 마치 여성의 삶은 불행해야 한다는 듯이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된 게 아냐. 당신만은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지? 그런 일은 없어. 그러기엔 나같이 불행하게 떠도는 여자들이 너무 많거든.’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남편의 여직원이 온 그날, 그 일이 일어나자 모든 것이 달라져버렸다. 나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이 다시는 예전처럼 되어지지 않았다. 만들다가 만 효경과 수의 트렁크 팬티는 언제까지나 상자 속에 구겨져 있었고 단 한 번 사용한 오븐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으며 식탁의 서랍 속에 있던 시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되지 않았다. 풀 먹인 부엌 커튼도 창문에 달리지 못한 채 굴러다녔고 오디오 속엔 듣다만 CD가 언제까지나 박혀 있었다. -p31

 

이후, 미흔은 극단적인 조울증과 무력증으로 약물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삶이 지속 되었다. 효경은 사업도 어려워졌고 아내의 깊어가는 병에는 시골 생활이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해변가 근처 서점을 얻어 시골 생활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렇게해서 나비마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을을 떠다니는 부희의 신산스런 삶의 편린들과 인실댁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과 마을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휴게소집  여자의 처절한 삶의 무늬들은 미흔의 위태로움과 어우려저 불길한 전조前兆를 드리운다.

 

하필이면 애인과 바람을 피다 시아버지를 낫으로 찔러 죽인 부희의 집(빈집)에서 뛰쳐나온 미흔과 마주하게 된 우체국장과의 첫 만남이후 둘 사이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미흔이 계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다면, 규는 자기 내면의 욕구에 충실한 색의 사람이다. 그는 관습이나 제도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연애주의자였고 미흔에게도 자신의 연애방식인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다. 서로에게 예속되지는 않고 즐기되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규는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 않은 채  절대적으로 욕망에만 충실한 관계만을 원했다.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로는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죠. 마음속에 금기를 가지지 말아요. 생은 그렇게 인색한 게 아니니까. 옷을 말리는 것 따윗 간단해요. 햇볕과 바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죠. 살갗이 간고등어처럼 좀 짜지기는 하겠지만.”

 

색과 계사이, 미흔과 규는 서로에게 탐닉하면서도 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결국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의 댓가는 놀라울 정도로 처절하게 끝을 맺는데, 한편으로 의아했던 것은 그 둘의 사랑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규가 크게 다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흔이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색과 계, 욕망과 규범의 경계에서 미흔의 게임은 다시 제자리의 계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게임은 이미 내정되어 있던 것이다.  규와의 밀회장소로 가는 날을 '친정에 와서 밀회 장소로 가고 있는 부정한 여자, 내 일생에서 어쩌면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일 것'이라고 술회한 것처럼 체온이 뜨거운 동안만 날 수 있는 나비처럼, 미흔이 온전한 여성으로서의 특별한 날은 오로지 규를 만날 때 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둘의 게임은 , 남자는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 것이었지만 여자는 사랑하기 위한 '단 하루'만의 특별한 날을 만들기 위해서 한 게임이다. 어쩌면 미흔의 사랑은  여자의 일생에 사랑은 연속성을 지니지 않는 일회성의 꿈(날지 못하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은유가 아니었을까. 가족이라는 관습과 제도에 갇힌 여성의 삶 (계)에  내면의 욕망에 충실한 색의 세계가 서로 충돌하며 뽑아내는 특별한 날의 의미가 깊어가는 가을의 한숨처럼 처연하다.

 

"안녕하세요. 미흔이예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구요? 글쎄요. 어쩌면 그건 아주 평범한 일이죠. 문제는 그것이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웠다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화약처럼 불붙여 상상력의 끝까지 달려갔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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