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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 3차분이 출간되었다, 『문』은 [산시로]와 [그 후]를 잇는 소설이다. 실제로 [그 후]를 집필한 후, 원고 독촉으로 급하게 [문]이라는 소설을 작명했다는 에피소드도 실려있다. 그 후에서 쓰여져 있듯이 ‘그 후’ 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산시로>에서는 도쿄의 대학 생활은 소설 [그 후]에서는 대학이후의 일을 그리고 있다는 의미와 <산시로> 이후 성숙한 남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후’였다.
[문]은 [그후]와 [산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연결성을 가지지만, 소설전반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어둡기만 했다. 자본주의 물결에 동화되기 시작한 시대 분위기가 암울했던 이유도 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위궤양 증세가 악화되어 가던 즈음에 집필된 탓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작품이었던 [도련님]을 빼고는 이후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언저리에서만 머물고 있는 아웃사이더들이다. [산시로]의 산시로가 서툴고 어리석은 촌놈을 벗어나지 못한 채 청춘의 터널을 지나듯, [그후]의 다이스케가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닐 아드리미라리 (어떤 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를 에고이즘과 탐미주의자로 만들어 시대를 탕진하듯이 [문]의 소스케 역시도 자신의 세계에 갇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같았다.
금술이 좋은 부부라는 수식과는 다르게 소스케와 오요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화목한 분위기보다는 우울함이 느껴졌는데 다소 답답해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슬로우모션의 느릿한 비디오를 보는 듯 느릿느릿 전개되는 느낌이 아주 오래 전 흑백텔레비전 속의 무성영화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주위 환경에 한 템포 느리게 반응하는 것처럼 이들은 주변환경에 무심하리만치 느리게 반응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유산을 가로 챈 숙부가 소스케 명의로 두 쪽짜리 병풍 하나만을 남겨두고 가로챘음에도 화는커녕 순순히 병풍을 들고 집에 돌아온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그마저도 내다파는 것도 할 줄 몰라 몇 번을 들고 내갈 정도로 세상물정에 어둡기까지 하다.
이들이 이렇게 주변과 단절된 듯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유복하게 살았던 소스케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을 살아가게 된 계기는 아내와의 결혼에 있었다. 친구의 여자였으며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됨으로 집안과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학교도 휴학해야 했으며 친구가 소개해 준 직장에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산다. 결혼 후 오요네는 세 번이나 유산했고 더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당시 인쇄술이 발명되어 막 보급이 되기 시작할 때, 난생 처음 보는 발명품 앞에서 소스케는 이런 말을 한다.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해서 결국 그것이 세상에서 활용될 때까지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었'다고, 이처럼 소스케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 앞에서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서있는 '문 밖의 남자'로만 존재했다. 산시로와 다이스케, 이어 소스케까지 어지럽고 혼란했던 근대라는 문 앞에서 늘 언저리에 머물며 부유하는 존재로 남겨지는 실존의 쓸쓸함의 노래가 아닐까.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머릿속에서 분명히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열 힘은 조금도 키울 수 없었다. 따라서 자신이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손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닫힌 문 앞에 무능하고 무력하게 남겨졌다. 그는 평소 자신의 분별력을 믿고 살아왔다. 그 분별력이 지금은 그에게 탈이 되고 있음을 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취사선택도, 비교 검토도 허용하지 않는 어리석은 외골수를 부러워했다. 또는 신념이 강한 선남선녀가 지혜도 잊고 여러 가지로 생각도 하지 않는 정진의 경지를 숭고한 것이라며 우러러보았다.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저히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짝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p253
3차분은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문]과 [춘분 지나고까지]와 [행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