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난 중년의 삶을 처음 맞이하고 있다. 30대의 나이와는 또 다르다. 중년에 이르러서는 삶의 많은 것들이 흔들리곤 한다. 불혹이란,  유혹에 흔들리는 나이가 아닌 유혹이 많아지는 나이이기에 그렇게 불려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치관의 새로운 정립, 우리 나이에는 더욱 필요하다. 더욱 확연히 느껴지는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부차적이라는 부분이다.  

 

그런 중년의 나이에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있다. 사회 통념상 중년의 여성에게 있어야 할 안정된 어느 것 하나 가진 것이 없다.  남편도 직장도 아이도 없는 그녀가 마지막 보루로 선택한 것이 술이였다는 것은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남편은 자신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살고 있고, 둘 사이에는 그렇게 안 생기던 아이까지 있다. 레이첼은 그런 남편의 이웃으로 살고 있다. 술에 쩔어 살면서 매일 전남편 톰의 전화를 기다리는 찌질한 모습의 레이첼은 호감가는 캐릭터가 절대 아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되기까지 하자 그녀의 삶은 더욱 벼랑 끝에 서게 되고, 얹혀 사는 친구의 따가운 눈초리에 못 견뎌 그녀는 매일 기차에 오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만이 그녀의 상실과 고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그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기찻길 옆 집 15호에 기차가 잠시 멈춰서는 순간이다 영화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부부가 있는 곳, 자신은 갖지 못했던 행복한 삶을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도 붙여주었다. 제스와 제이슨이라고. 레이첼은 제스와 제이슨처럼 완벽한 커플을 보며 상실감을 채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스가 제이슨이 아닌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레이첼의 삶은 또 한번 흔들린다.  

 

소설에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매일 기차를 타는 여성은 레이첼로 알코올 중독일 뿐 아니라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제스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본 이후를 레이첼은 기억하지 못한다. 술에 취해 혼미했던 기억들과 사라진 시간들, 게다가 제스까지 실종되자 레이첼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우연치 않게 제스가 실종되는 날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고 레이첼은 제스의 불륜으로 제이슨을 의심하기까지 하지만, 모호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실종되었던 제스의 시신이 발견된다.

 

세 명의 여성이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진행이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졌다. 메건과 애나, 레이첼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해나가니 집중이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앞장부터 다시 읽어보니 더 재미있다. 세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엮어가는 애증의 관계 속에서,  나약하고 의존적이던 한 여인이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극한의 스릴이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긴장감은 없지만,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살아가던 의존적인 여성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은 그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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