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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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책을 만난다. 이렇게 멋진 책을 이제야 알다니 !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을. 나에게 <인생의 베일>은 그런 책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만났더라면 그래도 지금보다 더 근사한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투정어린 상상을 하게 되는 책이다. 나는 예전부터 결혼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생의 베일>과 같이 1925년 작품인 김우진의 희곡 <이영녀>의 삶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삶이 얼마나 신산스러운 것인지를 떠올려보게 한다. 영녀는 결혼해서 남편과 세 아이를 두었지만 어느 날 남편이 가출하게 되자 매춘으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간다. 매매춘 단속에 걸려 감옥에 들어갔다 출소후 공장에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공장장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거부하던 영녀는 결국 쫓겨난다. 이후 유씨와 재혼하지만 유씨의 지나친 성욕으로 인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매우 극적인 삶이지만 1920년대 여성의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뿐 더러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더욱 신산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같은 시기의 작품으로  <인생의 베일> 역시도 1920년대의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서머싯 몸의 작품배경은 스페인, 영국, 독일, 러시아, 스코틀랜드, 프랑스, 홍콩등 국제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군의관이면서 영국의 첩보요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에게 결혼은 하나의 탈출구인 동시에 인생 제 2막이 열리는 중요한 관문이다. 이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알았던 가스틴 부인은 딸 키티를 일찌감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삼류 변호사였던 남편을 판사 만들기보다 키티를 능력있는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쉽게 느껴질 정도로 키티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교계에 등장한 후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지만 지위가 좋으면 수입이 변변찮았고 수입이 좋으면 지위가 낮았다.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남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자 결국 키티는 스물 다섯까지 미혼인 상태가 된다. 반면 키티보다 못생겼고 볼품 없었던 동생 도리스는 사교계에 등장하자마자 외과의사의 아들과 약혼한다. 동생보다 늦게 결혼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키티는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의사 월터의 청혼을 승낙한 후 홍콩으로 떠난다

 

오로지 결혼상품으로만 키워졌던 키티는 부족함 없는 결혼생활에서 권태로움을 느끼게 되고, 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난 총독부 차관 찰스가 접근하자 둘은 급속도로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만능 스포츠맨이며 허영심 많았던 찰스는 단순하고 사치스러웠던 키티에게 매우 적합한 짝이었다. 그런 키티를 사랑한 월터는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들렸다가 키티와 찰스의 바람 피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사랑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이 정도였다.

 

그의 모든 배려가 오히려 지겨웠던 키티는 월터의 고백을 듣자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남자의 잘못이라며 자신의 바람을 월터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찰스를 사랑한다고 외치기까지 한다. 

 

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아요. 그저 너무나 평범한 젊은 여자일 뿐이죠. 난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내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난 춤추고 테니스 치고 극장에 가는 게 좋고 게임을 즐기는 남자들이 좋아요. 당신과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늘 나를 지겹게 만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것들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당신을 베네치아에서 그 숨 막히는 화랑들로 날 끌고 다녔어요, 샌드위치에서 골프나 더 쳤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키티에게  찰스가 자신의 부인과 이혼하고 키티와 산다고 한다면 이혼해 줄 것이며 반대로 찰스가 자신의 부인과 이혼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자원하게 된  메이탄푸로 떠나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당연히 찰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키티는 찰스가 부인이 아닌 자신을 선택할 것을 믿었기에 월터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러나, 키티는 찰스의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버림받는다. 이후 메이탄푸로 떠나는 마차 안에서 눈물로 나날을 보내며 월터의 차가운 눈빛을 견뎌내는 키티에게 찾아온 행정 부관 워딩턴은 유일한 벗이 되어준다.  이전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워딩턴에게 옮겨져 새로운 사색의 장을 열어주는데 세상사에 무지했던 키티를 깨워주는 일종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다. 매일 죽음을 바라보며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워딩턴에게서 삶을 관조하는 방법과 사랑을 배우며 성숙해 간다. 수도원에서 일하던 수녀가 하나 둘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게 되면서 일손이 딸리게 되자 키티는 봉사자로 자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인생은 너무나 이상해요. 평생 오리 연못 근처에서 산 사람이 갑자기 바다를 구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약간 숨이 차지만 사기가 충천해 있죠. 난 죽고 싶지 않아요. 살고 싶어요. 새로운 용기가 솟아나는 걸 느껴요. 미지의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늙은 선원이 된 것만 같아요. 내 영혼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풍요로울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들, 사방에 깔린 죽음의 공포와 싸워가면서 깨닫게 되는 정신적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삶에 드리웠던 문제는 아주 사소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티의 불행은 자신이 그토록 보잘 것 없이 생각했던 월터의 외양이, 내면에 자리 잡은 깊은 지성과 인품의 뛰어남을 넘어서게 되는 시점과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이다. 마음 저편에서 월터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콜레라로 사망한다. 

 

월터가 유언으로 남긴 한 마디는

 

죽은 건 개였어.였다. (어떤 마을에 사는 남자가 잡종개를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 개가 남자를 물자 사람들이 미친 개에 물린 남자가 죽을 거라고 법석을 떨지만, 남자는 상처가 낫고 정작 개가 죽었다는 내용의 골드스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에 나오는 대사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처럼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월터는 키티를 용서하지 못했다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 한복판으로 갈 정도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월터는 사랑했던 자신의 아내가 바람 핀 사실을 결코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월터가 키티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는 장면 다음에 펼쳐지는 장례식에서 워딩턴의 대화는 서머싯 몸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방금 전 그들이 월터를 관에 넣기 전에 씻길 때, 그를 봤어요. 그는 아주 젊어 보이더군요.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죠. 당신이 나를 처음 산책에 대리고 나갔을 때 우리가 봤던 거지를 기억하세요? 내가 겁에 질렸던 건 그가 죽었기 때문에 아니라 그가 조금도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그저 죽은 동물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월터도 마찬가지로 멈춰 버린 기계와 너무나 흡사했죠. 그게 너무나 두려워요. 그것이 단지 기계일 뿐이라면, 그 모든 고통과 가슴의 상처와 불행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이후 홍콩으로 돌아온 키티는 훌륭한 인품의 여인으로 칭송받게 되고 심지어 찰스의 부인은 이전에 키티를 경솔하고 천박한 여인으로 오해했던 것을 사과하기까지 한다. 미망인이 된 키티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는 찰스의 부인을 보며 죄책감에 빠지지만 다시 재회한 찰스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넘어간다. 

 

이렇게 작가는 다분히 속물적이며 위선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실험을 소설속에서 끊임없이 시도한다. 깨달음을 얻어 새사람으로 거듭난 것처럼 보였던 키티가 자신의 욕망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모습이라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비춰졌던 월터가 결국 키티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은 인간이 평생 짊어가야 할 십자가는 바로 자아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우리가 삶에서 결코 정답을 찾지 못하는 방황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이나 희망적이다. 키티의 깨달음은 이런 인간의 모순적이고도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맛보았던 생生의 소중한 충동은 앞으로 자신앞에 펼쳐지는 삶이 얼마나 험난하고 외로운 길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혼상품으로 키워졌던 키티에게 삶은  '탄탄대로로 쭉 뻗은 듯 보였던 ' 환상의 길이었지만 결혼이후 맞딱드렸던 삶의 리얼리티는 '복잡한 미로와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 그녀는 이제 나약한 여성이 아니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던 1920년대에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수동적인 여성성에서 능동적으로 변하게 되는 그 과도기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성에 의해 사회적 위치가 정해지는 그런 고전적 풍토에서 여성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서머싯 몸의 통찰이 대단하다. 하지만 사건 전개가 우연성에 의존하고 있고 여성의 삶을 지나치게 단면적으로 그리고 있어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은 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난 것이 후회될 정도로 아름다운 한편의 성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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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6-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원작이네요! 저는 원작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서머싯 몸의 작품이었다니- 모노로그님 리뷰를 읽어보니 원작에 비하면 영화는 매우 피상적이었네요;ㅁ; 저는 월터로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씨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찾아봤던 기억이 나요

淸隱청은 2015-06-08 15:3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페인티드 베일에서 나오미 왓츠인가요? 주인공이 참 이뻤어요.
에드워드 노튼 멋지죠~~!!
영화보다 소설책이 더, 인간성에 대한 심도깊은 통찰이 담겨있는 듯 합니다
영화는 영상미가 워낙 뛰어나서 그런 철학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은 듯 하고요.
개인적으로 책이 더 재미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