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현대인에게 가장 커다란 문제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권태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권태란 놈이 문제는 문제인 것 같다. 가끔씩 주변의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어지거나 군중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고독감이 나를 덮치면 견딜수 없는 무력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나를 괴롭히곤 한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산에 오르는 일을 시작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늘 내 언저리를 부유하는 존재,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권태이다. 생동하고 요동쳐도 모자를 판에 늘 똑같고 지루한 일을 쳇바퀴처럼 반복하는데 무슨 힘이 있어 이 권태란 놈을 물치 칠 수 있겠단 말인가. 매일같이 시지프스의 돌멩이를 이고 산을 오르는 것이 전부인 것이 삶의 맨얼굴이라면 너무도 허무하려나.

 

그런 무미건조한 일상이었다. 그 가운데 만난 류근의 시집은 소다같이 톡 쏘는 느낌이었다.

근데 이외수 선생님의 추천글을 보면서 쏟아지는 웃음, 류근 시인을 개 같은 시인이라 칭하는 이외수 선생님도 만만치 않지만 그것을 추천사임네 올린 출판사도 도찐개찐이긴 하다..큭큭..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이외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개같은 시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 문학적인 세련됨과 문법의 완벽함이 깃든 문장일 거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를 가르쳐 주려는 것처럼 작렬하는 시바, 조낸은 예사이며 맨날 술에 찌들어 사는 모습은 '시인 맞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러다 가끔 수많은 행간 사이 한 줄기 빛나는 문장이 하나씩 눈에 띈다.

 

과거는 불행하고 미래는 불안하지만 오늘 창밖을 건너오는 햇빛은 어쩔 수 없이 봄의 예감을 업고 왔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혼자가 되었을 때 구원받는 것이다.’

 

게다가 니들이 문학을 알아 외치며 무게 잡던 시절을 떠올리며 조또 모르고 까불다간 결국 조낸 쪽팔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하지만 보인다. 그 행간에 숨겨진 외로움이 슬픔이 그리움이...

 

그러나 조낸 겸연쩍은 인생이여, 배가 고프면 왜 나는 밥보다 술 생각이 먼저 나는가. 사람이 그리운가. 아침부터 그리운가. 그러므로 아니 된다. 라든지

 

아무래도 나의 가장 큰 지병은, 술에서 풀려나고 나면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것, 어떠한 기다림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아침이 재앙이라는 것, 아침부터 치욕이라는 것....

 

 

그래서 당신의 시바, 조낸은 위로가 된다. 이 참을 수 없는 권태로운 세상에 견딜 수 있는 것은 상처와 고통을 오랫동안 익히고 삭혀 잘 익은 장맛을 내는 시인들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 류근의 언어는 그런 삭힌 장맛이다. 세상언저리에서 방황하던 젊은 날의 한 페이지 같기도 하고 세상을 향해 원망을 날려 보내던 시절의 한 페이지 같기도 하고 가난과 궁핍으로 초췌해 가던 과거의 한 페이지 같기도 하다. 그 페이지들이 모여서 상처와 고통으로 점철된 아픈 시절을 노래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삶은 원래 그런 거다. 모두 각자의 돌멩이를 얹고 저마다의 아픔을 그러안은 채 산을 올라가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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