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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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삶에서 결혼이란 어떤 의미일까. 현대에 와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구시대의 억압된 관습에서 자유롭게 개선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삶에서 결혼은 여전히 남성의 삶에 부차적으로 덧붙여지는 통념정도로 인식된다. 결혼은 여성이라는 한 개인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활동에 있어도 수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폴란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외동딸 이디스는 행복하지 않았던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이후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쓰는 로맨스 소설 작가가 된 이디스는 고상하고 낭만적인 여성들을 팬 층으로 둘 정도로 인기있는 작가반열에 오른다. 이때까지 이디스는 스스로를   세상 물정을 제법 잘 아는 신중한 여자이며 분별없는 나이는 지난’,‘집이 있고 요리도 잘하고 마감일도 엄수하는능력 있고 이성적인 현대 여성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첫 이미지는 쉽게 말해 완벽하고 똑부러지고 자기관리도 철저한 능력자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유부남과. 남성이 주는 매력은 다 갖춘 듯한 남자, 재산도 많고 남성 호르몬을 사정없이 풍기고 다니며 미소까지 섹시한 남자인 데이비드와 사랑에 빠지며 내연의 여자로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지만, 이웃에 살던 싱글남 제프리 롱의 공개 청혼으로 얼떨결에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새 집과 새친구, 심지어 시골 별장과 사치품까지 들러리로 내세우며 고지식하지만 점잖은 제프리 롱과 일사천리로 진행된 결혼식 당일, 데이비드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디스는 결혼식을 갑자기 취소한다. 자존심이 상한 제프리와 친구들은 이디스의 행동에 휴식이 필요하다며 휴양지 호텔 뒤락에 유폐시킨다.

 

호텔 뒤락은  버림받은 여자, 아니면 쫓겨난 여자, 돈을 받고 멀리 떨어져 사는 여자, 아니면 옷에 돈을 쓰는 여자들의 전형공간이다. 외형적인 느낌으로도 충분히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지만 작가가 호텔 뒤락을 너무 오래 삶아버린 송아지고기 색과 같은 무채색 공간이라 한 것을 보면 더욱 고루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유폐당하듯 버려진 곳에서 만난 여인들은 결혼과 사랑에 의기소침해진 이디스를  심리적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고 이디스는 데이비드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는 일에만 몰두한다.

 

내 말은 실제 삶에서 말이예요. 소설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내 소설에 쓰기에는 너무 끔찍해요.”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어머니와 이모들, 게다가 ‘자신이 당장 이루고 싶은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든 상관없이 그 사람의 관심을 끌 때까지는 가만히 있거나 혹은 조용히 있지 못하며 남편이 남겨 놓은 유산으로 사치를 일삼는 비상식적인 모습의 퓨지 부인과 그런 엄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딸 제니퍼, 거식증에 걸려 개를 끌고 다니며 히스테릭한 증세를 보이는 모니카, 아들 내외에게 쫓겨나 우울해 보이는 보뇌이유 부인까지, 호텔에 있는 여성들의 단편적인 삶의 형태는 다소 산만하고 파탄적이면서 암울하. 거기에 한 술 더떠 아내가 바람나 도망가고 무늬만 아내를 원하는 재력가 네빌은 이디스에게 부와 안정된 미래를 제안한다.  홀로 남겨진 슬픔과 절망가운데 있던 이디스는 새출발에 대한 희망에 고무되어 답장 없는 데이비드에게 이별의 편지를 부치지만,,,,,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저녁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걸 알기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온종일 햇볕 따가운 정원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예요. 매일 저녁 그 사람이 올 거라고요.

소설 초반부에는 저작권 중개인 해럴드가 이디스의 소설이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는 부분이 나온다. 위와 같은 일을 겪기 전에 이디스는 자신 스스로를 현대여성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해럴드의 이야기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허나, 호텔 뒤락에서 현대 여성들의 하나같이 불행한 삶( 심지어 자신마저도) 과 대면하게 되자 여성의 삶에서 결혼이 주는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마치 백마탄 왕자님만을 기다리던 여성이 백마탄 왕자는 소설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이디스는 자신이 매일 쓰던 , 데이비드를 향한 연애편지가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장면은 로맨스 작가로서 현실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것으로 이후 이디스의 행보가 결혼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여성의 삶으로서나 사회인으로서의 결혼은 목적이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표방하는 장면이다.  이디스가 선택한 삶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이상을 맞추려 했던 고전적 풍토를 벗어나 여성 스스로 주체성을 회복하여 가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임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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