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2
토머스 하디 지음, 유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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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를 여고시절에 읽었었기에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들어 다시 읽게 되니 테스가 보여주고 있는 여성성이라는 아이덴티티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테스에 대해서 너무도 얕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현대에도 여전히 순결한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머스 하디가 붙인 부제 역시도 a pure women 이다.)  

 

1단계 처녀 

말롯의 처녀들이 춤추는 날, 동네를 지나가는 여행객이었던 에인젤과 스쳐가며 만난 인연이 테스와의 첫 만남이다.  순수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테스는 짧은 만남에도 에인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이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 귀족 가문이었다는 자만과 도취심에 젖어 있던 아버지와 낙천적이나 생활력은 없는 엄마의 장녀로 태어난 테스는 아래로 동생 셋이 더 있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자  트랜트리지 부잣집 친척  더버빌 가에 양계일을 하러 떠나게 된다,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데다 얼굴이 예쁜 테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 알렉 더버빌은 이후 테스를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2단계 처녀이후

체이스 숲에서 알렉에게 처녀성을 잃은 후 4개월이 지난 뒤, 테스는 집으로 되돌아온다. (4개월동안 알렉의 애인으로 지냈던 것 같다.)  4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집으로 되돌아 온 이유는 알렉이 집안에 보내주는 물건이나 말과 같은 물질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에 알렉이 주는 선물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고 번번히 테스를 좌절케 하였으며 반항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알렉과의 마지막 이별장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계속 받기로 들면 당신 여자로 살아야 하는데 그거 안 할래요!“ 라는 것으로 봐서는 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농촌 처녀에 불과했던 테스는 남자가 주는 댓가성의 물건들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듯하다. (남자에 대하여 무지와 교육을 받지 못해 한탄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자의식이 강하였고 속물적 근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테스는 알렉의 옆에 있어야 여성으로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회 통념상 순결을 잃은 남성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아이까지 뱃속에 있었으니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랑한다고 거짓말 하면서도 충분히 알렉과 여느 여인들처럼 호위호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테스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 부분 역시도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부분과 많이 다른 부분이었다. 알렉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로 버림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테스는 선택을 한 것이다알렉은 자신이 테스의 집에 말을 주었고 동생들을 보살펴 주었다는 말을 하며 테스에게 거절하지 못할 빌미를 제공하며 성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과 가난은 테스를 항상 따라다니는 약점이자 가장 큰 짐이었다. 가난과 궁핍의 생활이 계속되어 갓난 아이를 데리고 들판에 일을 하러 나가면서도 테스는 알렉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귀족의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알렉의 아내가 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테스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과 규범에 자유로왔던 테스는 스스로 규범이나 인습에 얽매이는 속물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것은 당시 시대에서 목사나 신부만이 세례를 줄 수 있다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죽어가는 아이(사회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몰염치한 자연이 선물한 사생아였던 소로) 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3단계 회복

토마스 하디는 테스를 이렇게 규범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와 자연 일부의 여성으로서 체화한다.  사회적 규범에서 테스는 처녀가 아니었고 순결을 잃은 여성이지만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부분에서 더욱 순결한 여성으로서 변모해 간다. 영혼을 믿었으며 단순한 처녀에서 성숙한 여인만이 지닐 수 있는 사색의 아름다움이 테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를 무시한다면 그녀가 겪은 일을 인문교육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아이가 죽은 후, 더욱 가난해진 집안 살림으로 남쪽으로 떨어진 목장에서 소젖 짜는 일을 하게 된 테스는 새 삶을 시작한다는 희망으로 길을 나선다. 그곳에서 오래 전 말롯의 춤판에서 보았던 에인젤을 만나게 된다.  테스가 만난 두 남자, 에인젤과 엘릭은 서로 상반되는 캐릭터로  둘 다 귀족 계급으로  엘릭은 욕망과 욕정에 충실한 육의 사람이라면 에인젤은 욕망과 욕정과는 다른 자연 그대로의 순수를 사랑한 영적인 사람에 해당된다, 엘릭은 방탕하게 살며 삶을 탕진하지만 에인젤은 사회의 규범과 위선에 맞서며 삶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성인의 삶을 꿈꾼다.  그런 그의 눈에는 목장의 다른 여성들보다 언제나 사려 깊고 영혼과 별의 존재를 믿는 테스는 정말 순수하고 순결한 자연의 딸이었고 그에게 그녀는 더 이상 소젖 짜는 처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의 정수, 곧 여성성이 응축된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잡아 간다.  

 

4단계 결과

계속된 에인젤의 구애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고백을 할 용기를 내었지만 번번히 고백하지 못한 테스의 내면은 첨예한 갈등의 고통이 시작된다. 목장에서 에인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하루 꿈과 같은 나날이었고  테스는 사랑보다 더한 숭배에 가까운 헌신으로 에인젤을 사모한다.  목장 처녀들이 에인젤을 짝사랑하면서도 테스에게 사랑을 양보할 정도로 테스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숭고함이었다. 애초에 속물적인 위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직설적이고 너그러운 성품의 테스는 결국 결혼식 당일에야 고백을 하게 되고 지적이며 사회적 편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에인젤은 결국 자신 스스로의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채 테스를 떠나간다. 테스가 말했던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진짜 내가 아니라 내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여자랍니다.” 것처럼 말이다.

 

5단계 여자, 대가를 치르다

브라질로 떠난 에인젤을 기다리던 테스 앞에 남겨진 것은 다시 또, 가족과 가난이었다. 가난한 아름다운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이혼을 하지 않은 이상 높은 신분의 며느리가 험한 일을 한다고 알려지게 되는 것이 두려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테스의 궁핍은 더욱 극심해져만 간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눈썹을 반으로 자르고 치통을 앓는 것처럼 얼굴을 동여 매어 얻는 순무 캐는 일자리를 얻어 오전에는 서리를 오후에는 비를 맞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에인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마지막 장은 가엽고 안쓰러워 어떻게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품의 가장 백미는 에인젤과 테스의 대화였다. 1편에서 자기 변호에 서툴렀던 테스는 에인젤에게서 받은 인문적 지식들을 동원하여 에인젤을 설득하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지녔던 편견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게다가 테스에게 남겨진 짐덩이였던 가난과 가족에 대한 의무는 결국 테스를 벼랑끝에 서게 한다.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는 노동이라는 민중의 삶을 제르베즈로 대신하면서  '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더버빌가의 테스》는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남은 농촌 계급, 특히 여성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처녀성'에 대한 사회적 고찰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목차에서 여성의 처녀성이 테스의 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틀은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의 여성이 농촌 계급의 여성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생유전으로 사회규범과 관습의 파편들에 희생되는 한 여성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지만 세부적인 틀은 여성의 '처녀성'이 사회통념의 잣대에 속수무책으로 짓밟혀지는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테스로서는 비극적 삶이었기에) 테스의 가슴 절이는 편지들로 눈시울을 붉혀가며 그녀의 불행 이면에 수면처럼 잠겨있는 사회의 편견에 가슴 아파하며 , 고혹의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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