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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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알고 있었다. 삼십 대 문맹의 여자는 니콜 키드먼이 은퇴를 앞둔 70대 교수 콜먼의 역으로는 앤소니 홉킨스가 열연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배우들을 연상하며 읽을 정도로  다소 고집스럽고 강해 보이며 어딘지 모르게 지적여 보이는 콜먼 역의 앤소니와 가냘프면서 백치미가 있어 보이는 포니아 역의 니콜 키드먼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콜먼 교수. 사고에 얽매여 있지 않고 거침 없으며 진취적이지만 고집스러운 면으로 사회에 적이 많은 스타일의 교수이다.  칠십이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아테나 대학 학장을 지낼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교수이다. 은퇴를 앞두고 그리스 고전문학 강의를 하고 있지만  학기 시작이후 단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두 친구들을 유령없는 존재(spooks 검둥이들) 아닌가라는 단순한 말이 인종차별이라는 북풍이 되어 날아올지는 상상도 못했던 해, 그  해는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 스캔들로 미국 전역이 떠들썩한 해였다. 얼굴 한 번 본적이 없어 유령이라 표현할 것을 인종차별의 언어 스푸크로 알아 들었다.  공교롭게도 두 학생 모두 흑인이었던 것이다. 학교와 학생들은 콜먼 교수를 상대로 항의를 하였고 학교에서는 콜먼에게 해명과 사퇴를 요구한다. 얼굴 한 번도 본 적없는 학생들의 모함과 같은 항의, 같은 대학교수들의 공격과 언론의 호도 탓인지모르지만  아내 아이리스가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고 콜먼은 아내의 죽음으로 학교에 해명 한 마디 없이 그만둔다. 학자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콜먼은 오히려 ‘spooks 검둥이들이라는 제목의 논픽션 책을 집필하여 자신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며 재야? 의 작가인 주커먼을 찾아간다. 주커먼은 70의 나이에도 충분히 생기가 넘쳤던 콜먼이 불명예라는 굴욕감으로 삶을 갉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로 등장한. (여기서 화자인 주커먼은 <미국의 목가><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의 화자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삶을 삼십 사년이란 세월동안 당해 온 여자 포니아는 아테나 대학 학장과 청소부라는 사회적 지위조차 뛰어넘을 정도로 콜먼에게 강하고 격정적으로 찾아오지만, 둘 사이에는 베트남 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폭행과 알코올,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는 전남편 레스터 팔리가 있었다. 

 

 

 

 

 

성실함으로부터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 같은 게 혹여 남아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제는 이 단순한 갈망이 자신의 지침이 되도록 거기에 몸을 내맡겨야 할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비난을 넘어서자, 사람들의 고발을 넘어서자, 사람들의 판단을 넘어서자. 내가 죽기 전에 사람들의 화를 돋우는 것이자 역겹고 멍청한 비난의 심판이 지배하는 구역을 넘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고 콜먼은 스스로에게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서른에 자신의 생각을 두 문장을 이은 복문을 사용할 줄 모르는 여자 포니아를 보며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며 나이 칠십에 피붙이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책임과 의무라든지 사회에서 규정하는 그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섹스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밝혀지는 사실은 콜먼이 사실은 ‘spooks’ 검둥이였다는 것. 고교 시절 권투를 하였던 이유도, 하워드 대학에 진학했던 이유도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피부가 검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백인행세, 군대이후 뉴욕대를 진학하고 나서 콜먼은 자연적으로 스스로 흑인이라 밝히지 않게 된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굳이 밝힐 이유가 없었지만, 백인여인 스티나와 사랑에 빠지면서 흑인임을 밝히지만 스티나는 떠나가버린다. 이후 가족들과도 인연을 끊으며 콜먼은 과거를 부정하며 백인으로 살게 되었다. 결국 ‘spooks’ 검둥이는 콜먼이자,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단어이자 깊은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둘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광포한 미치광이 레스터는 계속 포니아와 콜먼의 주변을 맴돌고, 콜먼의 후배 여교수인 델핀 루는 콜먼에 대한 집착과 음해를 콜먼과 포니아가 교통사고 나는 날까지 이어간다. 죽어서까지도 콜먼과 포니아의 사랑은 왜곡과 비난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가십거리처럼 소문만 무성하게 남는다. 그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삶에서 얼룩(stain)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완전무결한 삶에 얼룩이야말로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오점이다. 아테나 교수라는 사회적 무게감을 덜어버린 후 나이 70에 비아그라로 섹스의 무한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콜먼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삶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기쁨이 되거나 슬픔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잣대로 타인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콜먼의 심연에 음각처럼 새겨져 있던  'spooks' 라는 상처를 보며 타인의 삶에 대하여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처럼 여론과 매체에서 재단되는 수많은 마녀사냥들에 익숙해져 가는 우리들의 삶 위로 콜먼과 포니아의 이야기가 농담처럼 겹쳐진다. 어쩌면 휴먼 스테인(인간의 얼룩)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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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1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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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4 17: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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