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인 노리즈키 린타로는 신본격파의 대표작가 중 한명이다. 사회 비판적인 본격파 소설과는 달리 독특한 설정과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기에 신본격파 추리소설은 기존 일본 추리소설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일조를 하였다.

 

녹스 머신에는 네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단편소설처럼 서로 독립된 내용으로 보였는데 어느 정도 내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걸로 봐서는 연작소설이라 할 수 있다.

   

<녹스 머신>

  2058년의 미래, 전자공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문학 역시도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화된 이야기를 창작하게 되었다. 미래에 등장하는 신개념의 문학장르는 이른 바 문학수리해석이라 한다. 문자의 결합과 작품 구조 해석에까지 연구 범위를 확대하여 작가 고유의 문체를 통계학 기법으로 완벽하게 살리는 문학장르이다. 문학수리해석의 호이 교수팀은 탐정소설 모델을 개량하는 일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고 상하이 대학 인문학부의 유안 친루는 그 해답을 130년 전의 고전 추리 소설에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영국 작가 로널드 녹스가 1927년 문집의 서문에 발표한 <녹스의 십계> 가운데 제 5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로널드 A. 녹스 (Ronald A. Knox)

(책을 펼쳐 친루의 찢어진 눈식의 기술이 보인다면 바로 책을 덮는 것이 상책이다.

-130년 고전 추리소설에서 유안 친루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논문의 주제로 <녹스십계>를 연구하던 중 과학기술관 리우장관의 호출을 받게 된 유안은 리우 장관에게 뜻밖의 제의를 받게 되는데 1929228일 녹스의 서문 마지막 줄에 쓰인 날짜가 바로 세계가 두 개로 갈라지는 시점이며 그 특이점에 양방향 시간여행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사람이 유안 친루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유안이 시간여행자가 도착한 과거의 어느 시점이 세계가 두 개(시간여행자가 출현하지 않았던 A라는 세계와 시간여행자가 출현한 B라는 세계)로 갈라지게 되고 과거로 간 시간여행자는 원래 세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들러리 클럽의 음모>

 들러리 클럽은 탐정소설을 매니아들을 지칭한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가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서 선보인 텍스트 구조 때문이다. 기존의 탐정소설에서는 명탐정과 조수가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토대로 하였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여사가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서 선보인 탐정소설은 탐정과 조수라는 기본을 깨고 사건의 전말을 범인이 밝히자 들러리 클럽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가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받아들여 그녀를 납치한다. 클럽의 의장 크리스토퍼 저비스박사와 왓슨 회장, 뉴욕 출신의 밴다인 변호사, 헤이스팅스 대위, 타운센트는 크리스티 여사를 납치하고 이어 살해 계획을 꾸미기까지 하는데, 회의 중에 탐정소설계의 교조주의자라 할 수 있는 밴다인이 심장발작을 일으키게 되면서 극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녀는 탐정소설의 규칙과 형식을 토대부터 전복시키고 불길한 방향으로 미래를 뒤틀려고 합니다. 탐정소설이라는 문학장르의 지적 건전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일치단결하여 그녀의 위험한 계획을 무력화해야 합니다.

    

<바벨의 감옥>

  큐브와 같이 네모 모양의 공간에 갇혀있는 의 이야기다. 나는 사이클로프스인 세력권에 파견된 지구인 공작원이다. 지구인 공작원은 훈련소에서 뇌 속의 경상인격과 동기화하여 의식을 통일한 후, 육체에서 의식을 추출당하고 데이터 인격으로 변환되어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후 사이클로프스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갈라테이아에 행성 간 무역상으로 위장 잠입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이다. ‘는 임무수행중 체포되어 사이클로프스인의 포로가 된 상태이다. 네모 모양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동기화되어 있던 파트너와 격리되자 간헐적으로 파트너의 사념이 전도되는데 모호하고 맥락도 파악하기 힘든 세로쓰기의 형태의 문자들을 해독하면서 는 탈출하는 암호를 알아내게 된다.

 

 페이지의 앞과 뒤에서 역방향의 구두점을 겹치는 데 경상 인격만큼의 최강 콤비는 없을 것이다

  

<논리증발>-녹스머신2

 

20739, 과거 녹스 머신에서 2058년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유안 친루가 영원히 사라지게 된 다음의 일이다. 전자책 사업부 원전 관리 책임자였다가 후에 스탠퍼드 대학 인문 공학부 대학원 생이 된 프라티바가 유안 친루가 No chinaman으로 과거로 날아가 물리법칙의 한계를 뛰어넘고 세계가 갈라지는 것을 막는 데 성공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시간여행에서 유안 친루만 성공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시간공학과 양자역학, 우주물리학 관련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었지만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세계가 둘로 나뉘어지는 것을 막았던 유안 친루, 인류에 최대 위험이 또 한번 찾아오는데 바로 추리소설들의 텍스트가 불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탐정소설은 세계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프라타바는 과거 양방향 시간여행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육체인 물리적 실존으로서의 몸이 블랙홀을 통과하면서 허수의 값 'No chinaman'을 가졌기 때문이며 <샴쌍둥이 미스터리>에 뚫린 구멍을 덮기 위해서는 특이점이었던 그가 다시 한 번 No chinaman이 되어 가상환경 내로 몸을 던져 블랙홀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안 친루는 이번에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시큰둥했다. SF장르에 양자역학과 평행이론이 마구 등장하는 느낌이 생경했고 이야기의 구조나 형식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별감동없이 읽어가다가 마지막 장에 가서 나도 모르게 흥미진진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앞장을 시작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한편의 매트릭스 세상을 만난 듯 텍스트로 만들어진 가상세계가 서서히 읽혀진다. 이후 펼쳐지는 4차원의 세계는 그 어떤 공상과학 영화보다 흥미로왔다. 추리 소설이라는 텍스트들이 하나의 살아있는 캐릭터였다. 특히 <바벨의 감옥>에서 지구인이 마침표에 뛰어들어 탈출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위치로 가상세계와 현실을 오가는 장면과 오버랩되어 감탄을 자아낸 순간이었다. 추리소설이라는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녹스머신~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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