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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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나도 육체노동자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눈과 손을 혹사시키고 집에 가서는 저녁 10시 전에는 편하게 쉬지도 못하는 감정과 육체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번 왔다갔다 하는 노동자이다. 김수영이 팽이라는 시를 보고 삶을 빗대어 말하듯이 노동은 팽이처럼 돌아야만 완성할 수 있는 삶을 말한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일까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나의 삼촌 브루스리> 이후 2년만이다. 한가한 농촌에서 촌부로 살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잔혹한 염마졸이 되고 무지랭이 농부가 잔혹한 도살자가 되기도 하는 격동의 현대사를 투시하며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사유를 쏟아내던 그가 육체노동자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돌아왔다. 기존의 작품에서 웃음기를 살짝 뺐지만 삶의 칼날은 더욱 예리해졌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단편집이다. 총 여덟편이 실려 있는데 부담없는 필치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다 약간의 고리타분과 지루함이 느껴지는 제목이라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천명관 특유의 입담이라 할 수 있는 재치와 농담이 적재적소에 잘 배여있는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이.

 

 

 

 [사자의 서]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자를 통해 삶과 죽음의 명암을 떠올려보게 하는 [사자의 서]와  섬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구회장 아들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경숙과 유자의 웃지 못할 각축전을 그린 [동백꽃],  글 한줄 못쓰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우아한 작가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끌어안고 사는 여류작가 이야기를 그린 [왕들의 무덤], 평생 출판 영업만으로 먹고 살았지만 쉰살이 넘어 아내와 이혼한 뒤  원룸 오피스텔에 살다 자살하는 영업부장과  수면제와 각종 알약으로 환상과 현실을 외줄타기 하는 수경의 이야기에 이어  폐가 썩어들어가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육체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는 [칠면조와 육체노동자]의 경구는 우연히 일하게 된 냉동창고 일을 마친 후 덤으로 얻는 냉동칠면조 한 마리로 마지막 발악의 악셀레이터를 밟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언제부턴가 잠을 자지 못하는 [전원교향곡]의 정환은 더욱 큰 비극을 품고 있다. 에덴의 꿈을 안고 귀농하였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파리지옥 끈끈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김밥 한줄보다 더 빈곤해진 현실은 불행한 삶위에 둥둥 떠다니는 건데기였다. 목도리와 패딩점퍼가 모두 핑크색인 [핑크]의 주인공과 삼만원을 벌기위해 쥐똥만한 알약을 먹고 대리기사를 하는 남자와의 만남은 괴기스러운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 

 

믿을 건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굴러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뼈는 노동에 닳고 살은 술에 녹아났다. 그렇게 늙은 몸뚱이는 풍화에 점차 스러지는 중이었다.-p121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가 모두 육체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마크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 하였듯이 천명관 작가가 우리 시대를 반추하는 이름은 바로 보편적 '육체노동자' 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삶과 같은 맥락이다.  온 몸으로 살아가는 노동자시대, 스스로 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팽이같은 하루를 살아내려면 육체를 단련시켜야 한다. 이들은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서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이 들이 위해서 수면제를 먹는다. 섹스를 하기 위해서 비아그라를 먹고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서 비타민을 하루 권장량의 오십배를 먹기도 한다.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고 뼈와 살은 노동에 풍화되어 간다. 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삶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쓴맛이 남아 자꾸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된다. 웃음에 파묻혀 간과하기에는 너무도 잘 벼려져 있는 삶이라는 칼날이 바로 우리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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