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미술관 - 그들은 명화를 통해 무엇을 보는가
최병서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혹한추위가 전국을 강타한다. 2014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번갯불처럼 보내고 나니 추위와 회상에 정신줄이 절로 놓아지는 듯하다. 아침에 뜨는 해를 보았는데 벌써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럴 때는 가끔 머리 식히는 의미에서 가까운 미술관이라도 가면 마음이 더없이 평화로워지곤 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던 찰나에 <경제학자의 미술관>을 읽었다. 미술과 경제라 가장 감성적이고 가장 이성적인 학문과의 만남이라 처음부터 무척 기대를 하게 된 책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것은 그림 하나에 담겨져 있는 을 감성으로 읽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지만 경제학자는 그림을 통해 사회경제사적 측면에 접근한 <경제학자의 미술관은 > 그림을 단지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시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수요와 생산하는 사람들의 관계까지 이해하는 안목을 트여주는 책이다. 

 

 

 

 

가령, 브뢰헬의 <바벨탑>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바벨탑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오만함의 결과물로만 바라보지만 경제학자의 시선은 다음과 같다.

 

16세기 산업화와 세계화의 과정으로의 이행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혼란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브뢰헬의 바벨탑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살기 위해 일하는 '  자본주의 사회속의 구성원을 나타낸다.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서 결합되는 게젤샤프트 (이익사회) 가 아니라 공동의 가치관과 감정을 기반으로한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 로 이행이 현대사회에 급변한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화의 가속화를 초래하는 터보 자본주의가 더 확대되도록 방치한다면 세계는 더욱 양극화될 것이고 우리가 쌓아올린 바벨탑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균열이 심화될 것임을 브뢰헬의 바벨탑에서 읽어내는 경제학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노동이 돈으로 계산된다면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삶조차 상품화되고 말 것임을 통찰함과 동시에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의 게으를 권리를 대변한다. 세속화한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는 노동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노동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강요한다. 16세기 브뢰헬은 인간적인 노동에 대한 화두를 무너지는 바벨탑 안에 각인시켜 놓은 것이다. 뿐만아니라 저자는 뒤샹과 크레이그 마틴의 미술품 가치에 대한 획기적인 안목을 통해 경제학의 출발점을 읽어낸다. 복지국가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사유재산권이 침해받지 않는 야경국가를 원했던 램브란트의 그림을 통해  '최소국가의 제약과 최대의 자유를 꿈꾸는' 국가의 연원을 밝히기도 한다. 예술작품과 경제 문제는 항상 그 출발선상에 선택의 문제가 있다뒤샹이나 크레이그 마틴의 예술작품을 위한 오브제 선택이 경제학적 선택처럼 예측 가능한 합리성에 기초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이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작품 소재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창출해내는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며 그림의 사회경제학적 측면을 읽어내고 있다.  저자의 설명대로 그림을 보다보면 당시의 경제상황 뿐만 아니라 시대의 배경에 따른 예술의 지평까지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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