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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시대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시사해 줄까? 모름지기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다. 과거 안에서 우리는 현재의 연속성을 배우고 그 연속성으로 미래를 연다. 지난 11월 타결된 한중 FTA 역시도 과거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외교관계'의 연결성에 있다. 그렇기에 과거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미래를 여는 열쇠나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서양 위주의 역사관에 물들어 주체성을 상실해 왔고, 그러한 관점은 여전히 현재진형형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모래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이 역사관을 확 뒤집을 만한 동양 중심의 역사관관으로서 세계사의 첫 포문을 열게 하는 역사서가 있다면 단연코 이 책 《한복 입은 남자》라 할 수 있겠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 라는 그림을 소재로 특집 다큐멘타리를 준비해 온 진석 PD는 서양의 글라이더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는 '비차'모형 앞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 설계도를 연상한다. 그냥 닮은 정도가 아니라 날개가 꺾인 각도며 대나무 살이 덧 대어진 위치까지 똑같은 비차를 보며 진석은 루벤스 그림의 주인공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비차와 다빈치, 루벤스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던 중 진석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 가 입고 있는 조선인의 의복에 의구심을 품게 되는데 기존의 학설로 한복 입은 남자는 임진왜란 때 이탈리아로 건너 간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설이 팽배해 왔다. 허나, 진석은 이러한 기존 다수설을 뒤집기 위해 역사 추리 형식의 다큐멘타리를 기획하고 있다. 루벤스 그림 속의 조선인 의복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남녀 구별 없이 널리 애용되었던 철릭이라는 옷이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중기의 철릭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의복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 사람이 서양으로 건너간 게 아닌 조선 초기에 누군가 서양으로 건너갔고, 그 후손 중에 하나가 선조의 옷을 입고 루벤스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 확률이 더 높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진석의 프로젝트는 루벤스의 그림 모델이 안토니오 꼬레아가 아니라 제3의 인물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루벤스의 그림 왼쪽 하단에 조선인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배는 선형이 유선형인 서양 배 모양이 아닌 바닥이 평평한 동양의 배라는 점도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조선인이 중국 배를 타고 유럽을 일주했음을 유추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 할만 한 증거를 찾지 못하던 중 우연히 비차모형 앞에서 만나게 된 이탈리아 여대생 엘레나 꼬레아에게 받은 유물 ‘비망록’은 진석의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한복입은 남자>의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는데에 중요한 단초가 되어준다.
엘레나 꼬레아라는 여성은 조상이 오래 전에 남긴 유물'비망록'의 존재를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고, 비망록이 세상에 나오자 알 수 없는 무리들에게 갑자기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가끔 한국을 찾는 엘레나는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비망록을 진석에게 맡긴 채 연락이 두절되고 오랜 유물로 보이는 비망록은 세 개의 고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진석은 재야 학자이자 헌책방 주인인 강배에게 비망록의 번역을 맡기고 강배의 독해력으로 비망록의 전문이 밝혀진다. 비망록은 다름아닌 조선시대 천재과학자 '장영실'의 유품이었던 것이다.
세종시대에 천재과학자로 살면서 서양보다 앞선 발명품을 만들었지만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조선 역사에서 홀연히 사라진 장영실의 사라진 세기가 '비망록'으로 생생히 복원된다. 관노로 살면서 세종에게 총애를 받았던 젊은 과학자의 이야기는 영원히 이루지 못할 정의공주와의 애틋한 사랑과 명에서 보낸 자객을 피해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을 구하기 위한 세종과의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세종의 고육지책으로 로마와 피렌체까지 여행하게 되는 장영실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더불어 7차 대항해 이후 역사 속에서 홀연히 사라진 명나라의 위대한 항해가 정화대장과의 만남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심까지 자극하는 듣보잡의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본주의다. -p438
장영실이 로마에 가서 '동방을'이란 곳에서 서양인들에게 금속활자와 천문학, 비차등의 기술을 전수하여 준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이야기다. 게다가 신 중심의 세계관에 물들어 신외의 모든 것은 배척하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던 서양인들을 상대로 동양인 장영실이 바꾸어 놓은 역사의 프레임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동양의 '인본주의' 사상을 전해주며 서양에 르네상스라는 바람을 불어오게 한 동양인 장영실로 인해 서양은 세계사에서 중심이 되었다. 조선초기 천재과학자의 사라진 역사가 지구의 반을 돌아서 세계를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변화시키듯이 역사의 이면이란 것은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아주 작은 가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진실의 이면에 다가갈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역사속 사실이 아니더라도 촘촘하게 짜인 팩션들이 역사와 한쌍의 톱니바퀴처럼 너무도 잘 맞물려 있어 마치 역사속에서 사라진 비서를 훔쳐 읽는 기분마저 들었다. 만약, 장영실이 한복입은 남자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세계사의 역사를 다시 써야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하, 간만에 통쾌하고 멋진 역사책을 만났다.
어떤 진리도 처음에는 부정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리 그 자체가 변화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의 발표가 시발점이 되어 서양 위주의 역사관이 바뀌어 나가길 고대합니다. 여러분의 당당한 역사를 되찾으십시오. - p490
역사란 우연을 가장하여 때론 치밀한 각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 p.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