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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질문 20 ㅣ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4
줄리언 바지니.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최고의 삶을 원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고 싶었다. 몇 년 전 까지 나는 잘 살았다. 아니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행복’이라 믿게 해주는 삶의 요소들, 가령 긍정적 마인드와 쾌활함의 원천이 되는 친절함이 나로 하여금 잘 살고 있다는 자만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젊은 날, 유난히 성공을 갈구 했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외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자기계발서를 읽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도처에 넘쳐나던 행복하기 위한 방법들, 성공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 문구가 길거리 현수막처럼 나부끼던 시절이었다. 문득 이 책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제목이 마치 지난날의 '나'를 향한 물음인 것만 같아 오랜 동안 행복만을 목표로 질주해 오던 지난 날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맹목적이었던 행복의 추구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에게 행복의 추구는 곧 성공이었고, 성공은 곧 최고의 삶이었다.
지난 봄, 갑자기 아팠다. 불면증과 멜랑꼬리의 과잉이 불청객처럼 찾아와 나를 괴롭히면서 온 몸에서 이상신호가 울려댔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고 있었기에 처음으로 느꼈던 몸의 이상신호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아픔이 오래가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삶의 지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목표'를 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해야 하는 성격이었고 습관처럼, 강박처럼 그것이 곧 행복이라 믿어왔다. 아프고 나서야 나는 '잘 ' 살고 싶었던 삶의 표적이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외면한 채 좋은 차와 좋은 집, 좋은 옷과 같은 물질적인 '잘' 삶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여 생각하다보니 침울해 지고 자신감이 점점 상실해 갔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잘 산다는 것을 하나의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만, 삶에서 나 스스로가 가치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지 않았기에 아팠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물음은 더욱 확고해져 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조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라 하였듯이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삶을 관조하게끔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철학과 사색이 부족한 시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양분은 '관조'함으로 얻게 되는 실천적 지혜이다. 철학자 바지니와 심리학자 마카로는 삶을 관조하는 방법으로 스무가지의 질문들을 통해 철학적 사색과 심리학적 분석으로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다. 철학과 심리학을 통해 '최고의 삶'을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도록 조망해 주는 것이다.
한 번 쯤은 우리의 삶에서 질문 해 보았음직한 질문들인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인가’에서부터 ‘행복이 인생이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와 같이 가장 기초적인 가치 개념부터 재정립 해 나간다. 최고의 삶에 부합되는 행복이라는 정의를 심리학자 마카로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 행복해질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하며 철학자 바지니는 행복하지 않아도 삶에 만족하며 멋지게 살수 있음을 조언해 주고 있다. 서로 상충되지만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을 통해 '최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은 책이다. 오히려 삶에서 최고의 목표였던 행복을 저자들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일과 자기 삶에 의미를 주는 일 다음의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행복을 만들어 내는 데에만 급급하여 행복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삶에 가치를 두고 의미를 찾으려 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최고의 삶'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책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 나가며, 내면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늘 자 한겨레 신문 특별기고문에서 도정일 교수는 인간이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지구 바깥에서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 살면서 살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고 채워 넣지 않으면 안되는 ‘생존의 부채’ 같은 것이라 했다.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관조하는 삶의 방법을 철학과 심리학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며 공허와 허무라는 여백의 삶에 생존을 위해서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까지 삶에서 빠져 있었던 질문
스무가지를 통하여 내 삶을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관조하는 삶'은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 정말로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