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소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3
미하일 조셴코 지음, 백용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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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서운함이 밀려온다. 며칠 동안 의미없는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삶이 더없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하릴없이 서재를 서성이다가 배를 움켜쥐고 웃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게 하는 러시아 풍자문학의 걸작이라는 소개글에 반해 빼어든 소설이 바로 미하일 조센코의 감상소설이다. 웃음과 풍자의 대명사라니, 러시아 대문호로는 도스트예프스키, 톨스토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체호프와 푸쉬킨, 고리끼와 동시대 작가이다.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감상소설> 서문이 여러 판 실려 있는 걸로 봐서는 매우 인기있는 작품인 것 같다.

 

 1판 서문에 작가는 신경제정책과 혁명이 결정일 때 썼다고 한다. 작가는 독자의 소중한 시간에  변변찮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는데 이때부터가 작가의 입질에 슬슬 낚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이 단편들을 하나의 소설처럼 이어주는 느낌은 바로 화자로서 작가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인 작가는 유쾌하며 마치 무성영화에서의 변사처럼 소설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입심 좋은 작가의 설명에 지루할 틈이 없긴 하다. 여덟 편의 단편들은 고리끼가 사회주의 시대의 혁명소설을 썼던 것처럼 혁명 이후의 삶을 재조명하는 소소한 시민들의 소소한 이야기이다. 1920년 혁명과 내전으로 엉망이 된 러시아사회가 경제 회복을 위해 시행하게 된  신경제정책’은 이들의 삶을 조각조각 파탄내며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민의 삶을 대변한다. 이들은 혁명시대의 영웅적 주인공이 아닌  비교양적이면서 때로는 속물적인 범상한 인간군상들이다.  (센코는 이들의 속되고 비문화적인 언어를 문학속에 끌어들여 새로운 문화현상의 위치를 부여하였다.-해설에서)

 

<아폴론과 타마라>에서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가이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세련되기까지 한 젊은이가  1차 세계 대전과 내전을 거치며 뒤틀려버린 삶을 그린다. 전쟁에서 돌아오자, 그를 기다린 것은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 타마라의 배신과 참혹한 가난이다. 절망 가운데에서 방황하던 그를 받아준 것은 공동묘지 비정규직 산역꾼 일자리였다. 노동만이 남아있는 삶,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명성과 화려한 삶을 꿈꾸었던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모습이다.

인생을 필요한 대로 살지도 못했고, 일하지도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했는지 그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톨스토이가 참회록에서 말하듯 인생에서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삶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인공  이반 이바노비치 벨로코피토프의 삶 역시도 공허한 일상이다.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막대한 재산을 유산으로 받게 되자 탕진하는 일에 몰두하며 혁명단체의 조직원들과 어울린다.  한때 작가로서 성공하는 듯 했으나, 혁명 사건에 연루가 되면서 외국으로 망명하는데  다시 러시아로 귀환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쓰던 혁명소설은 이미 폐품으로 변해 버렸고, 스페인어와 라틴어,  하프까지 칠 줄 알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그러한 능력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직업도 없이 지내다가 아내와의 계속된 불화로 이반은 점점 자신감을 상실해간다. 계속된 가난으로 아내마저 떠나가 버리고 폐인이 된 그는 결국 동굴에서 생활하다 도시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는 불가사의한 삶 앞에서 경악했다. 삶이란 지상에서의 존재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 같았다. 그는 죽음과 슬픔 속에서 문제는 바로 삶의 지속이라고 느끼며 자신의 능력,자신의 지식, 그리고 그것을 상기한 후,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서글픈 결론을 내렸다.-p73

 

극단적 비관주의와 과대망상증 환자 [무서운 밤]의 주인공 이바노비치, [꾀꼬리는 무엇을 노래할까] 에서 산전 수전 다 겪은 빌린킨의 인생과 단편소설 가운데 유일한 해피엔딩인 [즐거운 모험]의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페투호프의 이야기와  [라일락 꽃이 핀다] 주인공 블로딘의 결혼 성공기나 [지혜]의 이반 알렉세예비치의 축제일이 갑자기 상갓집이 되어버린 사건, 우연한 기회에 결혼하게 되었지만 염소 때문에 파혼당한 이야기 [암염소]까지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행하고, 무능하며 현실 부적응자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이자 작가인 미하일 조센코는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인물들과 소설적 장치들을 설명해주며 당시 사회에 만연하였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충돌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을 재현하고 있다. 이들은 매우 현실적이며 광범위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문학의 저변에 속한 이들이다. 화자인 작가는 비평가를 비판하기도 하며 동시대의 문학을 논하며 창작의 방식과 주제 선택의 과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장치들은 혁명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노동자들의 벌거벗은 삶,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웃음과 풍자의 거장이었으나 , 삶에서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반추하듯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구절

인생이
, 단순하고 혹독하고 평범한 인생이, 단지 몇몇 사람에게만 웃음과 기쁨을 허락하는 인생이 있을 뿐이었다.-p46

 

즉석에서 그는 순응의 불가피성에 대한, 단순하고 원시적인 삶에 대한, 살 권리가 있는 인간 각자는 모든 생물과 짐승들이 그런 것처럼 시간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껍데기를 벗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온전한 철학체계를 그들 앞에서 설파했다.-p76

 

심지어 날씨같이 변화무쌍한 것도 외국 소설에서는 늘 좋게 유지된다. 확실히 그렇다. 태양은 빛나고 온기를 준다. 무성한 녹음과 공기, 따뜻하다. 영혼의 오케스트라가 끝없이 음악을 연주한다. 바로 이것이 신경을 안정시킨다! -p157

 

사람이 한숨을 쉰다는 것은, 방해를 받아 소원 성취가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사랑이 충분히 허용되지 않았던 옛날에, 연인들은 푹푹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숨 쉬는 일이 가끔씩 있을 뿐이다. 우리 삶의 흐름은 그토록 단순하고 멋지게 진행되고, 우리 유기체의 소박하고 평범하고 영웅적인 움직임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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