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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시골에서 나고 자라 처음으로 도시라는 곳에 발을 디딘 촌놈 산시로, 덜컹거리는 기차에 기대어 바라보는 풍경은 낯설고 어색하다. 전차의 땡땡 울리는 소음과 같은 인파들, 끝도 펼쳐지는 도시의 살풍경 속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동시에 모든 것이 건설되는 도시가 낯설기만 하다. 세상이 풋사과처럼 떫고 수줍게만 느껴졌던 사회초년생인 산시로는 대학에 갓 입학하며 느꼈던 설레임과 교차하며 시골과 도시의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설레임과 낯섦이 크로스 되며 청춘이 시작되는 곳, 그곳이 바로 산시로 연못이다.
신선한 입김과도 같은 시작은 여관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 과 같은 어설픔이다. 낯선 남자를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여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알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는 산시로의 내면이 마치 수면위에 일렁거리는 잔물결처럼 일렁인다. 대학에 입학하며 사귀게 된 친구들 역시도 시골에서 온 산시로를 놀리기 일쑤이다. 검정색 커튼을 치고 상자만을 바라보며 물리학에 빠져 있는 노노미야와 철학적이지만 괴짜인 요지로에게 속아서 숙박비를 날려 버린 후 좋아하던 여자 미네코에게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은 산시로를 더욱 혼란하게 만들어 버린다.
격렬한 활동 그 자체가 다름 아닌 현실 세계라 한다면,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은 현실 세계에 털끝만큼도 접촉하지 않았던 셈이 된다. 운명이 갈리는 중요한 시점에 수수방관하며 낮잠만 잔 꼴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낮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신은 지금 활동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전후좌우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움직임을 보고 있어야 하는 위치에 놓인 것일 뿐, 학생으로서의 생활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은 이렇게 동요하고 있다. 자신은 이 움직임을 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가담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하나의 평면에 놓여 있으면서도 전혀 접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 세계는 자신을 내버려둔 채 격동하고 있다. 산시로는 몹시 불안했다.
산시로의 세계는 세 개의 세계가 첨예하게 갈등하는 세계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라는 세계가 교차하며 갈등하는 가운데 첫사랑 미네코가 등장함으로 인해 동요하는 청춘의 설익음이 행간마다 배어 난다. 우연히 연못에서 만난 여인 미네코를 두고 선배 노노미야와 설픈 질투를 하면서 갈등을 겪지만, 동등한 관계가 아닌 그야말로 서툴기만 한 감정일 뿐이다. 처음부터 무엇이든 서툴고 어색했던 촌놈 산시로와는 달리 박학다식하며 여유있던 선배와는 너무도 격차가 있었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신여성을 대표하는 이미지의 여자 미네코 역시도 산시로를 '호소에 가득찬 관능적인 눈동자' 또는 ' 기분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쌍커플' 같은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산시로를 헤매게 만든다. 산시로는 도쿄 한복판에서 그야말로 길 잃은 어린양, 스트레이 십이다. ‘요컨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고 몸을 학문에 맡기’면 그 세 세계를 뒤섞어 하나의 결과는 만드는 셈이라던 나이브한 생각을 하고 있던 산시로에게 미네코라는 존재는 일종의 스트레이 십이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알에서 깨어나려면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하였듯이, 산시로는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있는 하나의 성장소설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 서연을 좋아하면서도 말한마디 못하고 떠나버린 첫사랑처럼 산시로 역시도 미네코를 향해 마음만 졸이다 끝내버린 방황하는 청춘을 반추한다.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누구나 스트레이 십(길잃은 어린 양)을 거친다. 방황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산시로 연못위로 오래 된 추억하나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