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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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오스터 삶을 쓰다.

 

최근에 인간사랑에서 출판된 <글쓰기를 말하다>를 읽다가 인터뷰와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의궁전>을 읽어야 했다. 다행이도 블로그 이웃이셨던 dean님이 선물해주신 책이 서재에 꽂혀 있어 읽기 시작했다. (참 ! 요즘 Dean님은 잘 지내시는가? 불충한 이웃 이제서야 님이 선물해주신 책을 읽사옵니다 ! ~)  

 

우리의 삶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 속해 있는 거죠.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 본들,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줄곧 이런 미스터리들과 부딪칩니다. 그결과는 실로 끔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믹할 수도 있겠죠.-<폴오스터의 글쓰기> 중에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우선은 폴 오스터가 말하는 삶은, 우연의 연속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우연의 연속이 곧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  어쩌면 이 우연이라는 것이 조각 조각 따로 떨어져 있는 타인의 삶과 이어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쉬운 방법이 아닐까. 폴 오스터가 말하는 세계는 거대한 입면체로써 그 세계를 이어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다면 바로 달이다. 달이라는 구멍으로 보는 세계,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즐거운 상상인가.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로 시작되는 첫 구절이 인상깊은 이 소설은 주인공 포지가 달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삶의 첫 출발점이다. 이때의 달은 그저 분홍색과 파란색의 네온사인으로 휘황한 달의 궁전이라는 간판에 MOON에서 O가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보이던 그 순간에 포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포그의 삶은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삶은 어땠냐고? 그 이전의 삶은 무기력의 최고봉이었으며, 상실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으며, 체제의 실패자였으며, 사보타주의 도구이자, 낙오자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겨진 포그는 클라리넷 연주자이며 독신이었던 빅터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지독하게 게으르지만 낭만적인 예술가였던 빅터 삼촌으로부터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상상의 마법을 배웠던 그는 자신의 이름자가 지닌 '똘마니, 바보멍청이' 라는 의미를  원고라는 뜻 ‘ manuscript’을 줄여서 'M.S포그라는 서명을 만들어 낸다. 빅터삼촌의 이런 상상의 마법 덕에 포그는 그래도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p14

 

그러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은 삼촌 빅터가 죽으면서 사라져 버렸다. 포그에게 남은 것은 삼촌이 남긴 천권의 책과 얼마간의 빚, 약간의 유산이 전부였다. 삼촌의 책을 팔아 근근히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더이상 팔 책도 남아있지 않게 되자 아파트에서도 쫓겨난다. 배고픔과 무기력증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에 떠밀려 간 곳은 '센트럴파크' 공원이었다. 음식이 넘쳐나고 가끔은 일반인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그곳에서 포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달의 궁전에서 우연히 뽑은 그러나 운명같은 이 글귀처럼 태양아래 죽어가던 포그는 단 한번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 키티와  대학교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짐머에게 구원된다.  짐머와 키티의 간호로 극적으로 살아난 포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자신이 빠져있던 상상의 세계와 자신의 슬픈 운명과 과도한 자기연민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학교 취업상담실을 통해 휠체어를 타고 눈이 먼 화가 에핑의 비서업무를 소개받으며 새 삶을 시작하는 포그.  '한편으로는 몹시 고약하지만 한편으로는 존경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선량한 사람'인 화가 에핑은 또다른 우연의 시작이다. 우연의 연속은 포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고 그 세계는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해준다. 아무도 없었던, 이 세상에 오로지 혼자라 생각했던 포그에게 에핑과 바버는 태생에서부터 미완일 수밖에 없었던 포그의 달을 보름달처럼 꽉차게 만드는 운명적 필연이자, 잃어버린 조각이다. 

 

 

   그것은 모두 놓쳐 버린 관계,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그 이야기의 조각들은 처음부터 모두 거기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몰랐다.

 

우연의 연속으로 포그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죽었다던 아버지를 만난다. 과거와 현재를 ,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삶'은 계속된다. 실제로 이런 우연의 연속성은 '삶'을 이루는 역사이기도 하다. 아무리 찬란했던 순간이었더라도 과거는 지나가면 그뿐이고 달의 몰락에 슬퍼하지 말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낼때 비로소 삶의 문을 열린다. 그래서 언제나 뜨는 태양은 과거이고 현재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며 (세상이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우연이라는 달은 미래이지만, 그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게 하는 일은 폴오스터와 같은 작가가 있기에 가능하다. 달처럼 은은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상상은 곧 현실이다. 달이라는 구멍으로 보는 세계는 그래서 더욱 판타스틱하다.

 

※폴오스터가 말하는 달은 많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모든 것의 시금석이 되는 상징적 의미의 달이다. 신화로서의 달, 찬란한 다이애나, 우리 내부의 어두운 모든 것들의 이미지로서의 달은 상상, 사랑, 광기이다. 동시에 물체로서의 달, 천체로서의 달, 하늘을 부유하는 생명 없는 돌로서의 달이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며 초월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달은 역사, 특히 미국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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