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4
E. L. 닥터로 지음, 정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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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미국은 소련과 미국의 공존의 시대이며 냉전의 시대로 불린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시대로 사회적 에너지가 격렬하게 분출하고 있는 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과 워싱턴 행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과 펜타곤 행진 반전시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과 같은 혼돈과 격변은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가운데 미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미국이라는 국가가 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다니엘서》이다. 소련이 핵무기 보유를 발표하자 소련에 핵폭탄 기밀을 넘기려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로젠부부 사건을 재구성한 다니엘서는 닥터로를 미국 역사의 기록자로서 존 업다이크, 필립 로스, 솔 벨로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한 책이다.

 

로젠부부가 스파이로 미국사회에서 처형되는 사건을 재구성한 이 소설은 아들 다니엘의 시선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며 편집하고 이에따라 다양한 관점을 시사한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으로 화목할 뿐만 아니라 지적이며 현명하였던 부모님이 FBI에 잡혀갈 때 다니엘과 수전은 이제 막 유아기를 지나고 있었다. 부모님이 감옥에 갇히면서 자유주의자 르윈 부부에 입양되어 성장한다. 시대의 혁명적인 분위기에 흡수되며 다니엘은 과거 부모님의 재판과 사건을 제 3자의 입장으로 재구성하며 객관적이었던 시선은 점점 1인칭의 '나'로 변하여 과거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중립적인 다니엘과는 달리 신좌파의 영향으로 부모님의 결백을 주장하는 수전은 잦은 자살시도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수전의 방황과 다니엘의 고독은 사회적 비난과 고통의 산물이다.

 

모든 것은 포착하기 어렵다. 정의도 그렇다. 인간성도. 담배 자판기에 쓸 25센트짜리 동전도.'

미국 사회와 장기적인 역사적 맥락속에서 부모님의 처형이 지닌 의미에 천착하며 부모님의 삶과 주변의 역사를 복원하며 각종 신문의 헤드라인과 뉴스방송을 통해 부모의 사건을 재조명한다. 다만, 1960년 미국은 소련과의 평화적인 공존정책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적이 없으며 소련의 핵무기 독점에 대하여 미국이 취할 수 있었던 시츄에이션은 책임을 질 수 있는 희생자가 필요했다는 진실을 마주할 뿐이었다. 다니엘이 알게 된 것은 그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적이며 모든 국가는 자기 국민의 적'이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의 대외정책은 우리는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고 소련은 가지지 못했다는데 전적으로 의존했지. 지독한 오판이었어. 그 사실이 세계를 무장시켰지. 그리고 소련이 핵을 가지게 되자 우리의 지도력과 국가적 전망이 파탄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대안은 불법 공모를 색출하는 것뿐이었고. 양자택일의 문제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철떡 같이 믿었던 부모님은 어린 다니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나라에서 무고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순 없단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

 

다니엘은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믿었던 순진한 아버지 폴에 대해서 국가에 대한 무한 신뢰와 이상주의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부모님들을 위한 투쟁으로 신좌파와 뜻을 함께 하였던 수전은 신좌파가 투쟁에만 관심이 있을 뿐 부모의 구명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신좌파에게서도 등을 돌린다. 수전은 결국 과거와 현실을 연결시키는 데 실패했고 다니엘의 말마따나  분석의 실패로 인해 자살한다.

    

역사는 전쟁터다. 과거가 현재를 제어하기 때문에 역사는 항상 투쟁의 대상이 된다. 역사는 현재이다. 각 세대가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최종적인 산물인 신화이다. 따라서 신화에 불경하고 신화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고 신화에 빛과 숨을 불어넣고 신화를 태우고 역사에 되돌려 보내려고 시도하려는 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이다

 

이 책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부모의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 그리고 역사적 사건이 담론으로 변형되는 과정에 있다. 신좌파 성향의 스턴리히트는 수전과는 달리 정치성향은 자유롭고 자신의 무정부적인 통찰력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자기성찰적 성향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다니엘은 자신의 부모의 유죄여부가 아닌, 역사가 쓰고 있는 진리를 꿰뚫어보기 위한 성찰을 끊임없이 소설에서 시도한다. 그나 혹은 그녀가 지닌 정치성향에 대해서, 자신들의 부모가 지닌 정치성향에 대해서, 수전의 혁명가적 기질에 대하여 천착하며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듯 민주적인마음은 로젠버그 사건처럼 규정하기 어렵고 복잡하여 어떠한 최종적인 해석도 거부하는 사건을 재현하는 데 필수적' 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박노자 교수는 국가는 계급사회 권력관계의 중심이고 그 생살여탈권은 권력관계의 핵심이라는 말을 하였다. 한 개인이 국가라는 계급사회에 희생되는 사례는 역사에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현대에도 수도 없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사건들이 역사속에서 지배계급이 사회적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려는지 보여주고 있듯이 지배계급의 착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개인은 정치권력의 희생양이 되는 비극 가운데 있다. 작금의 정치가  정치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그와는 반대로 정치의 광기를 목격하는 지난한 한  해를 보내고 있듯이  민주주의의 모태나 다름없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은 틀렸다.''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적이며 모든 국가는 자기 국민의 적' 이것이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진실이며 곧  진리다.

 

아메리카여, 나는 네게 모든 것을 주었고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견딜 수 없다.

아메리카여, 언제 우리는 인간의 전쟁을 끝낼 것인가?

너의 원자폭탄과 함께 뒈져라.

-앨런 긴즈버그[아메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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