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제대로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삶에서 본질적인 것만을 마주 대하고,

 삶으로부터 배워야만 하는 것을 못 배우지는 않았는지 알기 위해서.

 또 죽음을 앞두고야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지 않으려고.- [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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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이들과 카카오스토리 친구이다.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SNS상에서 소통하고 친구처럼 우스운 이모티콘놀이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독서광이었는데 요즘은 종이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조금은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앱 세대를 맞이한 아이들에게 굳이 사용을 제한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활용하는 지혜를 알려 주고 싶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도 종이가 사라지는 시대가 머지 않았음을 예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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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작가는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며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연필보다는 컴퓨터자판이 익숙하다. 자판에서 튕겨지는 글소리를 들으며 써내려가는 글자들의 현란한 무늬들에 감미로움을 느낀다. 종이와 연필이 주는 감성도 좋지만 컴퓨터 자판 역시 그런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프린트해서 읽는 일이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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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종이가 주는 감성의 향수가 잊혀져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원고지나 편지에 애정을 듬뿍 담아 꾹꾹 눌러쓰던 감성은 스마트폰 자판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감성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있지만 향후 시대를 이끌어갈 앱세대들이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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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에는 빅브라더가 독재 권력을 위해서 종이(노트)사용을 금지하고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론 한없이 가벼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종이이지만, 종이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이다. 역사의 폭군들이 시대마다 등장하여 책을 탄압했던 이유 역시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서 종이는 폭군이자 압제자이지만, 또한 구세주이자 증인이기도 하다.”(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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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이언 샌섬은 종이가 인류 문명사에 미친 영향을 전방위적 접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이언 샌섬은 종이를 궁극의 인공물이라고 부르며, 종이와 인간 문명의 관계를 심도 있게 살핀다.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페이퍼 엘레지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가 맞이한 현실의 벽을 탐색한다. 종이의 제작에서부터 종이의 역사, 종이로 할 수 있는 놀이와 종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정치의 밀접한 관계까지 우리의 모든 삶과 연결되어진 종이를 불러내어 박물하고 있는 신개념 종이박물지이다.   아주 오래 전 읽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가 책이 있는 한, 인류는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던 것처럼 이언 샌섬 역시도 '종이'의 종말을 말한다는 것은 자크 데리다가 오늘날 작별을 고한다고 함은 어느 날 글쓰기를 익혔다는 이유로 말하기를 멈춘다는 말과 비슷하다.”며 인류문명사가 종이 위에서 삶을 써내려가고 있는 한, 종이의 멸망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종이보다는 컴퓨터 자판을 익숙하게 여겼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종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한낱 종이 한 장이 가진 가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하였다. 책은 곧 사상이며 종이는 인간을 대변해주는 사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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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우리가 스스로 형성하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내면을 지닌 개인이 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종이는 우리를 읽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또 종이는 우리를 지울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기억할 만한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 귀중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 살아 있는 존재. 죽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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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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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4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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