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확 휘어잡는 소설의 맛을 안다면, 가끔씩 찾아오는 강렬한 끌림이 그리울 때 이 책을 만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추리소설은 박카스 맛이다.
잡념이 많을 때는 몰입도 높은 추리소설을 읽곤 하는데 《라스트 차일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존하트라는 작가가 뇌리에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로 탄탄하고 촘촘하게 잘 짜여진 스토리 구조에 문학적 감성까지 겸비한 웰메이드 스릴러다. 아니나 다를까. 존 하트는 이 책으로 명실상부 최고의 작가로 극찬을 받고 있다. ( 난 왜 이제야..)
에드거 상 최우수 소설 상·배리 상 최우수 소설 상·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 수상
풍부한 캐릭터와 인상적인 스토리 속에서 꽃피는 문학적 범죄소설(literary crime fiction)의 진수
이 책은 변호사였던 저자가 어린이 성추행범의 변론을 맡게 되었다가 포기한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소아성애자의 변론을 한다는 것이 굉장한 짐이 되었던 모양이다. 존 하트는 그 경험으로 변호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라스트 차일드》로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자상한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양 손에는 이란성 쌍둥이 조니와 앨리사의 손을 잡고 일요일마다 교회가는 화목한 가족에게 불어 온 불행의 바람은 너무 잔인했다. 예뻤던 앨리사는 실종 되었고, 그 죄책감으로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슬픔과 절망으로 무너져 내린 어머니를 차지한 건 동네에서 가장 돈이 많은 켄이다. 켄은 어머니의 슬픔을 이용해 매일 약을 건네 주었고 무력한 어머니는 약에 취해 살아갈 뿐이었다. 홀로 남겨진 조니는 철저히 버려져 힘겹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단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힘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고, 믿음이란 엿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한때 밝게 빛나는 그의 세계에 이제는 차갑고 축축한 안개가 드리워졌다. 그게 바로 인생이자 새로운 질서이다, 조니에게는 자신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길을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며, 과거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일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앨리사를 홀로 찾아다니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조니는 주변의 소아성애자와 전과자들의 신상파악을 하여 밤마다 몰래 이들을 관찰한다. 아이작 후손이었던 조니는 용감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매일 약해 쩔어 사는 엄마를 위해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 장을 보고 밤에는 앨리사를 납치해 간 용의자를 추적하느라 쉴 틈이 없다. 꾀죄죄하고 마르고 목에 독수리 깃털을 두르고 방울뱀의 꼬리뼈를 부적처럼 찬 조니. 그런 조니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하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헌터 반장. 주변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헌터는 앨리사의 실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앨리사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자 조니가족에 대해 알 수 없는 연민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사랑인지, 동정인지, 아픔인지도 모른채.
그날도 어김없이 홀로 주위를 탐방하며 앨리사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조니는 굉음과 함께 다리 밑으로 추락하는 한 남자를 목격하게 되고 갑자기 나타난 신장 2m, 몸무게 150kg에 달하는 엄청난 거구의 흑인을 만난다. 다리에 떨어진 남자와 거구의 흑인을 피해 집에 돌아온 조니에게 또 한 명의 여학생 티파니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경찰은 조니가 목격한 두 남자 가운데 한명이 범인이라 생각하고 조니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그러나, 추락한 남자는 이미 사망하였고 거구의 흑인은 자취도 없이 사라진 상태. 설상가상으로 거구의 흑인 집에서는 잔인하게 살해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 사이 조니는 소아성애자 전과를 가진 자르의 집앞에서 보초를 서다 잠들게 된다. 잔인할 뿐만 아니라 싸이코패스였던 자르는 잠든 조니를 덮치고 몸싸움을 하던 중, 납치되었던 티파니의 등장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자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불과 열세 살이었던 조니가 사라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어른보다 강한 면모에 감탄이 절로 나오기까지 한다. 약에 온 슬픔을 맡긴 채 살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 조니의 다친 모습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이전의 약한 모습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이 되기 위해 또 한번의 시련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이외에도 조니의 유일한 친구 잭의 방황과 헌터 반장의 순애보와 크리스 형사의 어긋난 부정, 사회에서 소외된 자의 아픔, 소아성애자들의 비정상적인 면모들을 부각시키며 그 안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닌 가장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하였듯이, 작가는 가장 평범하고 보통사람이 찰나의 실수로 범인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렇기에 밝혀지는 진실에서도 악인이라 규정할 수가 없었다. 악의 평범성처럼 너무도 평범하고 , 부모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도덕문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악은 인간의 마음에 자라난 암 같은 건가 봐."
손에 들자마자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과 빠른 속도감. 거기에 더해지는 열 세 살 소년에게 닥친 처참한 현실의 암담함으로 인해 가슴 졸이며 읽은 소설이다. 게다가 다채로운 인간군상들의 등장으로 '악'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가 아닌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럴들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필요하다. 눈부신 한 소년의 성장기로 볼 수도 있고,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가족의 감동스토리로 읽어도 좋다. 누구라도 삶에서 마음의 암이 자라는 순간이 있기에 그 순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점과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