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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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영화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윌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꼽는다. 지금 다시봐도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선 영화라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평범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는 절박함도 그렇지만  한 개인을 상대로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수단들에 나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4시간을 감시하고 있는, 지구촌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CCTV나  신용카드, 인공위성, 휴대폰, 자동차 이 모든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얼마나 소름돋는 진실인가. 이 소름돋는 진실을 이 책 <1984>에서도 볼 수 있다.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문학 가운데 하나로, 스토리 라인은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것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라는 점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지만)1948년 조지오웰이 작품 집필 당시 스탈린 체제였던 소련의 전체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1984년 오세아니아에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 윈스턴 스미스가 주인공이다.  진리부에서 근무하는 윈스턴은 과거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담당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라는 당의 이론하에 과거의 조작물을 현재 시점에 맞게 완벽하고 철저하게 조작하고 재생산하여 출간한다. 과거 통제의 목적은  '빅브라더'라는  독재 권력을 절대화하고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오세아니아 어디에든  '텔레스크린'이 그를 감시하고 산이나 야외 넓은 곳에는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무심코 생각하는 표정이나 안면경련,  근심하는 얼굴이던가  혼자 중얼거리던가 ,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그것으로 끝장나는 인생이다.. 눈빛하나로 '사상죄를 짓는 세상이 바로 1984 년이다.

 

2+2=4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락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여기에 따른다.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고 당에서 모든 기억과 사상까지 관리감독하고 있는 세상에서 윈스턴은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공포와 증오와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다.  철저하게 쇄뇌되어 당에 무조건 굴종만이 전부인 삶, 윈스턴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 날 불현듯 2+2+4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하고 감시를 피해 노트를 산 후 매일  일기를 쓴다. 이 행위는 매우 혁명적인 의미이며  무언가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쓴다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첫  자각이다. 삶에서 생존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의미를 찾으려는 행위는 인간이 되기 위한 기본조건이다. 

 

그런 윈스턴 앞에 젊고 아리따운 내부당원 '줄리아'가 나타난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감시와 통제 사회에서도 사랑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둘은 나름의 사랑을 절실하게  키워간다. 사랑에 이어 더욱 대담해진 윈스턴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빅 브라더'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반대파  '형제단'에 가입하기까지 하며  행동강령이 적혀 있는 금지된 책 골드스타인의 '그책'을 동료 당원 오브라이언에게 구해 읽는다.  윈스턴은   줄리아와의 애정행각 역시도 '당'에 맞서 한대 치는 정치적 행동'이라 생각하게 된다.

오늘에 와서는 순수한 사랑도 , 순수한 욕망도 없었다. 모든 것이 공포와 증오로 뒤범벅 되어 순수한 감정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포옹은 전쟁이었고, 절정은 승리였다, 당에 맞서 한 대 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 행동이었다.-p159

 

 줄리아의 사랑은 '감정이 죽어있던 ' 인간 윈스턴을 '살아있는 ' 인간으로 깨어나게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스파이였던 오브라이언의 밀고로 애정(사상)부에 끌려가 윈스턴은 잔혹한 고문과 세뇌를 받는다.  고문에 못이겨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를 고발한다. 애정부를 나설 때 윈스턴은 이전과 달리  2+2=5라는 오브라이언의 말을 믿고 '굴종은 곧 자유'이며 당은 곧 진리를 외친다.  오세아니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살아있는 인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우거진 밤나무 아래에서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다네.

저기 그들이 누웠고 여기 우리가 누웠지,

우거진 밤나무 아래.

 

인지부조화 현상을 연구한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한다. 합리화라는 단어는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표현이다. 2+2=4,2+2=5가 될 수 있는 과정은 바로 이런 인간의 합리화하는 존재 , 카시러가 말하듯 '상징적 동물'이다. 조지 오웰은 이 책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인 '언어(신어)'와 '사고(이중사고)'를 지배당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윈스턴'의 심층적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날조했다는 사실을 곧 잊고 그 날조된 허위 사실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심리작용을  이중사고라 하는데  이러한 '이중사고'의 쇄뇌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마비시켜 사고를 말살한다.  두 번째 언어의 통제는 신어라 하여  옛날부터 써온 정상적인 언어를 구어라 하여 폐지하고 모든 것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탄생한 언어가 바로 '신어'이다.  예를 들면 good좋은의 반대말은 bad가 아닌 ungood, excellentplusgood으로 대체 사용한다. 결국 좋고 나쁜 것에 대한 모든 개념은 단 여섯 개의 낱말로 표현가능해진다. (책의 마지막에 신어부록이 실려있다.) 이 신어의 목적은 인간의 사고 범위를 한정시키며 진실과 허위에 대한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데에 있다.  '이중사고''신어'로 빅브라더는 상징화 된다. 그렇게 2+2= 5가 가능해진다.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보다 나은 인간이고자 하는 갈구와 소망으로 얻어진다. 동물이 아닌 인간이고자 하는 삶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살게 된다.’ 이 말은 조지 오웰이 피를 토하면서도 후대에 남기고 싶어 한 말이 아니었을까. 너의 사고와 언어를 지키지 않으면 지배당한다. 또 하나의 거대한 빅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라며..... 소름 돋는 사실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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