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온 첫 번째 전화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 밤에는 열대야로 쉽게 잠들지를 못해 이터널 션샤인》으로 버텼다. 사랑이라는 판타지와  현실이 주는 사랑의 간극에 괴로워하다 결국에 주인공이 택한 것은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기억 삭제’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사라질까?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기억,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때에만 지속가능한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이 인류 문명사에 단골주제로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결코 작지 않다. 영화 역시도 사랑의 기억을 클리너로 깨끗이 지웠음에도 자석에 이끌리듯 더 애절해지고 간절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끌려간다. 결국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 , 마모되는 기억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죽음으로 읽혀졌던 메시지들이 다시 또렷해진다. 절멸해가는 시간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것을 삶이라 부르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죽음이라 하듯이 이 지리멸렬한 삶에서 사랑은 삶에 대한 축가나 다름없다. 미치 앨봄의 소설에서는 그러한 삶의 축가를 볼 수 있다.  전작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는 삶과 죽음의 축약을, 『 도르와 함께 한 인생여행』에서는 시간이라는 신화를 통해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천국에서 걸려 온 첫 번째 전화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재의 시간들을 반추할 수 있다.

 

한 번만 더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 콜드워터에 걸려 오기 시작한 벨소리의 주인공들은  몇년 전 암으로 죽은 언니나 아들, 엄마로부터 걸려온 천국의 전화이다. 죽었던 이들이 걸려 온 전화로 살아있던 이들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에 못다한 이야기들과 살아있다면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매 삶의 소중함을 떠올려보게 한다.  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서  콜드워터를 앞다투어 취재하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다. 누구는 가짜라 하고, 누구는 사기극이라 하며 미디어들의 도가 넘는 보도행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행복감에 빠지게 된다.

 

 

   콜드워터에 걸려 온 천국의 전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리운 목소리라는 점에서 기적이 다. 마치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외로움에 지쳐가면서 자신과 같이 표류한 축구공을 주워  눈코입을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감동처럼 인간은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삶 전체를 반향하게 하며 전생을 관통하는 과제이다. 그런 그리운 이들에게 걸려온 천국의 전화라니 어찌 감동스럽지 않겠는가.  죽을 때까지 마모되지 않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삶을 직조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사랑'이야말로 이 지리멸렬한 삶을 아름답게 하는 유일무이한 감정이다.  그래서일까. 믿기지 않지만, 믿고 싶어지는 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는 그래서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는 이별로 가슴 아파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 엄청난 과제를 떠안고 있다면, 이 책으로 그리운 사람과 만나보기를 권한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는 퇴적된 그리움을 만개하게 하는 사랑의 힘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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