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다상담 3 - 소비·가면·늙음·꿈·종교와 죽음 편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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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3〗은 다상담시리즈의 마지막 편 (소비· 가면 · 늙음 · · 종교와 죽음)에 해당한다. 이번편은 지난 주제들보다 더 생활밀착형이라 그런지 그 어떤 때보다 삶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나 소비, 가면, 늙음, 꿈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 아닌가. 우리의 삶에서 소비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고, 사회생활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늙음이라는 길목과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 죽음이 기다리는 한, 우리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다상담 1>권에서 조금은 가볍게 시작하였던 상담들이 3권에 와서 리얼함의 방점을 찍는다. 철학자 강신주는 1년 반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현장철학이 영글어갔고 , 그 안에서 출산의 고통과 절규로 난무하는 산고의 현장에서 같이 아파하며 도와주는 산파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듯하다. 책을 읽는 동안 벙커에서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통해 가슴 속에 차오르는 ,  어마무시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지독한 삶의 무게는 누가 만들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의 증명은 오로지 소비이다. 그러나, 한가지 이 소비의 진짜얼굴은 '욕구불만'에서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행한 사람일 수록 소비성향이 강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 수록 불행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처럼 돈을 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신주의 진단은 '냉장고를 없애자'(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제는 쉽게 변하지 않지만,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냉장고를 없애는 것이다. 우리 삶에 냉장고가 없어진다고 생각해보면, 이 자본주의의 체제아래 구속된 삶은 매우 간단히 정리가 된다. 우선은 불필요한 물건을 살 필요가 없어지고, 한 번 먹을 음식을 조리하면 된다. 음식쓰레기가 많아지지 않으니 환경에 도움도 되고 자연스레 사회는 분산 자본주의의 형식을 띠게 된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한 식량 경제의 지역화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소비'사회를 '사랑과 연대라는 인간적인 형태'의 사회(책에는 가라타니 고진의 공동체를 예로 들고 있다) 바꾸어야만 가능하다. 자본주의가 담당하고 있는 이 소비의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된다면 우리가 떠안고 있는 삶의 무게는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것은 소비 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를 조밀하게 떠받치고 있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은 사실 우리가 삶에서 애써 외면하려던 진실에 가깝다.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노쇠한 육체가 싫어 늙음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늙어가고 있는 것 따위가 아닌 사회에서 쓸모 없어지는 경험으로 인하여 슬픔을 느끼는 것이고,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에 길들여지게 된 이후로부터 우리는 '맨얼굴'을 읽어버린채 가면이 내얼굴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삶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해요.

 

 

삶의 강도는 꿈이 없는 데에 있어요. ‘저 정상에 올라가야지, 나의 꿈은 저기야라고 생각하면 툭 떨어져요. 그냥 붙잡는 거예요. 그리고 또 붙잡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사이엔가 정상에 가 있어요

 

 그냥 비 오면 우산을 펼치듯이 그렇게 가는 것이 삶이예요. 인생은 소요유처럼 목적이 없이 걸어 다니고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그래서 예쁘고 멋있는 거예요.비록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위대한 사람들이 삶을 여행에 비유할 때 목적지를 정하고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비도 만날 수 있고요,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있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변할 예측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 셀렘 그 위기 그 긴장을 사랑하는 거죠. 삶이란 원래 그런 드라마틱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이니까요.

궁극적인 목표는 첫 번째 단계예요. 꿈이 없는 상태, 그래서 완전한 현실에 사는 단계. 이 꿈의 단계를 계속 올려 일체의 꿈도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향유하는 수준에 이르러야만 해요. 어느 순간 삶이 목적 없는 삶처럼 진행되어야 하죠  

 

중년의 터널을 지나면서 간혹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가끔 바보처럼 아무 생각없이 멍해지는 경우가 많아져서이다. 마치 미노타우로스 미궁에 빠진 것처럼 아무리 헤어 나오려 해도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때가 근래 들어 횟수가 잦아졌다. 테세우스에게는 아드리아네가 준 실이라도 있었지만, 내 삶에는 그 '아드리아네의 실'이 없다. 오로지 구원자도 나요. 탈출구를 찾는 것도 나이다. 이 삶이라는 미궁의 열쇠는 오로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강신주의 철학은 바로 '날 것 그대로의 민낯인 나’를 찾는 주문이다. 미궁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척박한 삶에서 건져올리는 깨달음이야말로 이제껏 삶을 아름다운 것이라 착각하게 만들었던 환타스마고리아의 등불을 끄게 해주는 힘이다. 결국 내가 애타게 찾고 있었던 '아드리아네'의 실은 '맨얼굴'의 나였던 것이다. 나를 진짜로 나로 살게 해주는 상담을 읽고나니, 괜시리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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