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자유다 -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희망의 인문학 수업
얼 쇼리스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거리의 철학자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재소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철학을 고민해 왔기에 그를  현장 인문학자라 부르기도 한다.  혼자서만 설 수 없다하여 사람 인(人)이듯,  人文(인문)학 은 사람 () 자처럼 한 다리로 설 수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고병권이 말한 참된 철학이란, 척박한 삶의 틈새에서 열리는 삶의 珍景(진경)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人)과 학문(文)이 만나 열리는 참다운 길이 人文(인문)학의 길이다.

 

너나없이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지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얼 쇼리스를 두고  '인문학 전도사'라 부른다. 예로부터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얼 쇼리스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돈이나 음식과 같은 물질적인 구제가 아닌 '인문학'을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사회비평과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얼 쇼리스는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만난 한 여성으로부터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인문학 교육의 여부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얼 쇼리스는 그녀와의 만남을 계기로 인문 교육과정의  '클레멘트 코스'를 창시한 후, 첫 학급으로   마약중독자, 재소자, 노약자등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과반수 이상이 사회복귀에 성공하였고 클레멘트 코스는 인문학의 효과를 입증하는 눈부신 교육법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문학은 자유다》는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하고 준비하게 된 과정과 마약중독자와 제소자 또는 노숙자들이 인문학 수업을 받고 나서의 전과후를 실어놓았다. 사회에서 최하층에 있으며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인문학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나'의 삶을 , 그리고  '너'를 이해하며  '우리'라는 공동의 삶을 깨달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기본 프레임안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겠다는 간절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과정이다. 수업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타인에게 배타적이었지만, 그들이 인문학 수업을 받은 후, 점차 자신을 사회라는 큰 틀의 공동체 안에서의 한 사람으로 깨달아가며 자유롭고 당당함을 지닌 개인으로 변화해 갔다. 마치  애벌레가 자신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순간의 경이와 같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일반인들은 동굴에 갇혀 사물을 어두운 그림자나 흐릿한 사물로 보지만,  철학자는  동굴 밖의 실존인 햇살을 마주할 수 있다.  '클레멘트 코스'는 쉽게 말해 동굴에 갇혀 실존을 못보는 이들에게 실존적 체험을 하게 해주고 철학자처럼 실존을 깨닫게 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쇼리스가 소크라테스적 방법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홉스와 흄, 칸트와 밀의 텍스트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수건을 벗고(무지를 벗어나 )실존을 깨닫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홉스와 흄, 칸트와 밀의 텍스트를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사람이 타인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도록,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설득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클레멘트 코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함꼐 시야에 들어와 있다.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하도록 돕는 일과 민주주의 정치 원리가 작동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문학의 진수는 불완정성에 있다. 종교와 달리 인문학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다. 인문학 비평에는 위대한 작품들을 엄선해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평생 동안 깊이 생각한다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인문학은 개별적인 각 작품, 각 시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수정된다.-P212

 

인문학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책에 실린 고병헌 교수님의 글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고병헌 교수님은 인문학을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만함으로만 남는다고 한다. 인문학 공부에는 다른 공부와는 달리 '삶의 절실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의 강렬함, 다른 삶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 있어야 매 삶에서 마주하는 실존적 어긋남을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일 때 인문학을 통한 삶의 변화는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문학을 딱딱한 학문이나 어려운 책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문학은 이처럼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은  자신의 세계를 깨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깨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실존의 고비를 넘어 선 우리라는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간다.  얼 쇼리스의 인문학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지 같이 고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흙탕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듯 척박한 우리의 삶에 피어나는 한떨기 희망은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넓이에 놀라는 일 없이는, 그로부터 삶을 에워싼 현실과 타인을 돌아보는 일 없이는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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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7: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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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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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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