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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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난바다로 자꾸 떠밀려가는 중년의 나이가 되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부표浮漂가 되어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이때 '나는 왜 여기있는가' 라는 질문은 실존의 문제가 된다. 인생이라는 바다는 처음에는 블루오션인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치열한 생존경쟁의 레드오션으로 변해간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사상과 중심이 바르게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인생 후반전을 부침속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공자가 불혹不惑이라 한 중년의 나이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유혹이 그 어느때보다 많아지는 나이임을 함의하고 있다. 2006년 인문학의 위기설 이후로 인문학은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삶이 더욱 곤궁해지고 피폐해져 가는 가운데 이제 인문학이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 사회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절망적이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행복'과 '희망'이 더욱 낯설어지는 사회, 보여지지 않는 이 위대한 가치들이 한 없이 쓰잘데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에서 도정일 교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보게 하고 있다.

 

산길 옆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은 실은 어미애벌레가 도토리안에 알을 깐 도토리열매들이다. 땅위에서 충분히 도토리의 영양분을 먹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미 애벌레가 온몸으로 나뭇잎을 떨어뜨린 것이다. 어미애벌레의 이러한 희생에 의해 도토리 안의 새끼는 새와 다른 벌레들의 위협을 받지 않고 도토리의 양분만으로 성충이 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지평속에서 자신들만의 생존법칙으로 고귀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도정일의 인문학은 삶에서 성충이 되기 위한 양분養分을 공급해주며 인문학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앎'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고 했듯이, 삶은 나의 무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내가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새로운 무지에 대한 자각, 그것이 참된 지식(지성)의 출발점이다. 저자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쓰잘데없는 일들을 모조리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사의 손길처럼 삶에서의 무지를 한꺼풀 벗겨 주고 있다. 인문학이 우리의 삶을 안전한 항로로 인도해주는 등대역할을 하는 것처럼 도정일 교수의 글에는 무지의 앎을 참된 인문학적 통찰로 바꾸어주는 마법의 힘이있다. 철학은 나를 앎에서 출발하지만 인문학은 너와 나라는 관계를 넘어서 공동체의 화합을 이끌어낼 줄 알게 하는 쌍방향 이해의 장을 마련하며 철학과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거짓과 허위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껴안고 상식과 건전한 판단에 의해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혹의 학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삶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서게 하는 것, 그게 우선 인문학의 가치라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한 번 밖에 없는 삶을 가치있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인문학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보름달이 왜 뜨는지 생각해보며 혼자 실실 웃는 것도 쓰잘데없이 재미있는 일이다. 바닷물을 섬으로 이끌 듯 한국인을 고향으로 이끌기 위해 보름달은 뜨는 것 아니던가? 그 고향에서 1년에 하루만이라도 돈 되지 않는 것들만 골라 생각해보는 일은 고귀하다. 보름달 뜨는 날이 그런 바보의 날일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정말로 문화적 경이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을 방법은 인간의 체온을 가진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자본, 주주, 투자자들을 함께 고려하자는 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고객, 노동자, 투자자, 하청업체와 대리점, 사회 공동체, 환경이 그 여섯 가지 가치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한국인의 집단적 신년 소망은 천사처럼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불안한 짐승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신년작심-

 

고통과 불행은 그 자체로는 결코 예찬할 것이 못 된다. 많은 경우 고통은 무의미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삶이 고통과 불행을 수반한다는 것 역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세계의 현실이다, 만약 행복의 추구가 불행의 완벽한 제거와 고통의 완벽한 회피에 목표를 둔다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완벽한 행복의 추구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삶의 진실이 아니며, 인간 사회의 도덕적 이상도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행복 방정식-

   

 

남들의 시선이 너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하라. 영혼이 병들면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보기에, 공자의 가르침이고 [논어]의 중요한 행복론이며 또 동양 담론이 수양이라는 말에 담고자 한 핵심적 의미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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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0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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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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