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이
질문을 망각한 사회는 제아무리 잘살아도 길 잃은 사회, 제아무리
휘황해도 어두운 사회, 제아무리
똑똑해도 눈먼 맹목의 사회다.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시저가 자신들의 무리를 이끌고 집이라는 개념의 HOME을
형성하며 보호자인간 윌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났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시저가 떠난 십년 뒤의 이야기이다.
10년후, 인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의 길을 가고 있고 살아남아 있는 생존자들은 ‘드레퓌스’ 의
보호아래 ‘타워’라는
구역안에 살아가고 있다. 반면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던 유인원 시저는 무리들과 함께 자신들의 왕국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타워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인간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오고 전기공급선을 찾아나선 이들은 시저와 유인원 무리들을 맞딱드리게
된다.
갑자기
나타난 유인원을 보고 놀라 총을 쏜 인간들에게 분노한 모습으로 '떠나라'는 말을 하는 시저는 전편보다 더 위엄있고 당당한 카리스마를
갖춘 유인원의 왕으로 변모해 있다. 인간들에게는 생존하느냐 마느냐의 절박감이 있지만 유인원들은 멋진 말을 타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며 불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며 가족을 이루며 집단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은 시저의 통치아래 일사분란하게 행동하고 있다.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댐 안에 있는 전력을 가동시켜야 했고, 시저는 인간의 절박함을 이해하며 유인원들에게 인간을 도와주라 명령한다. 단, 총은 모두
유인원들에게 반납해야 한다는 것. 시저의 도움으로 댐의 전력을 복원하는데 성공한 말콤은 시저와 함께 유인원들의 공간에서 머물지만, 그런 시저를
보는 2인자 코바는 영 못마땅하다.
인간 윌에게서 언어를 배우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시저는 인간에 대한 거부와 불신감이 없는 반면에 2인자 코바의 친구들은 인간들에게 실험용이
되어 갖은 학대와 고문을 받은 경험으로 강한 불신과 증오만이 있다. 결국 시저가 인간에게 보이는 호의에 거부감을 보이던
코바는 시저의 불문율이었던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를 깨고 시저를 죽인다. 코바의
배신으로 시저는 자신이 쌓아올린 정치이념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는
도정일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다가 노무현의 질문 편에서 발췌한 글이다.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의 축소판과도 같이 <혹성탈출>은
서로 대립 된 리더, 평화주의자
시저와 독재라는 광기에 물든 코바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전편<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이 사회적 동물로서의 첫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면 <반격의 서막>에서는 시저의 독립에 이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정치적 동물'로서의 시저란 점에서 다르다. 이들은
사회적 동물로서 자각과 동시에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 본성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다. <혹성탈출>이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블록버스터 시리즈임을 증명하는 것은 언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다룰 줄 알며 집단 생활을 하는 인간의 진화단계를 이 시리즈
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유인원을 그리고 있는 <혹성탈출, 반격의 시작> 은 여러가지 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이번이 7번째로
팀버튼 감독의 전혀 다른 버전의 혹성탈출이 2편
더
있다. (혹성탈출
1‣혹성탈출
2-지하도시의
음모‣혹성탈출
3-제
3의
인류‣혹성탈출
4-노예들의
반란
혹성탈출
-최후의
생존자‣2011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혹성탈출-반격의
서막)
시저를
총으로 쏴 죽이고 아들에게 인간이 죽였다고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코바의 광기는집단으로 전이 된다. 인간의 증오라는 집단최면의 광기는
평화로왔던 유인원의 세계조차도 증오와 살인의 공포에 물들게하고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한다. 인간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심과도 같이 인간 '뒤레퓌스(게리 올드만)'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원인이 유인원에게 있다며 유인원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코바와
뒤레퓌스와 대조하여 화해와 믿음이라는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시저와 말콤과의 우정은 인류에게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하여 준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유인원 VS 인간'의 대립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오래 전 우리 사회가 망각하고 있던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소환한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망각한 사회의 말로는 이렇게 정치적 동물인 유인원들의 부활로 다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P.S;
휴가가 다 끝난 줄 알고 출근했더니, 다들 놀란다. 8월 4일 출근하면 되는데.....헐^^;;;; 대체 요즘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모르겠다. 어제
아이들과 혹성탈출을 보고 저녁에 그림일기 쓰는 시원이(8살)의 그림을 보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시원이 왈, 원숭이가 너무
못생겼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