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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지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1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불타버린
지도'는
아쿠타가와상,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등을 석권한 작가 아베 고보(1924~1993)의
대표작이다. '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과
함께 '아베
고보 실종 3부작'으로
모두 영화화돼 각종 상을 받았다. 사라진
남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탐정이 수사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남편 주변인들과 마주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아베 고보를
[상자인간]으로
만났다. 몇
년전 아베고보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난해해서 기억하고 있던 작가이다. 《불타버린
지도 :세계문학전집
111》을
읽으면서 이 낯설고도 묘한 감각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다니곤 하였다. 환상문학 같으면서도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몽환적이면서도 알쏭달쏭한
것이 싫지 않게 감겨든다. 과거 [상자인간]도 그런 느낌이었다. 난해하고 기이한 상자인간들의 이야기. 아베
고보가 그리는 세상은 판타지인 동시에 해석과 풍자의 세상이다. 오로지 쓰는 것만이 소통 수단이 되는 상자인간들의 도시를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디지털 발달의 도시인들에 대한 풍자라는 것 같아 이상하게 헛웃음만 나온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불타버린 지도 역시도 이러한
도시인에 대한 아베 고보만의 통찰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라진
남편을 찾아달라는 한 부인의 요청으로 흥신소의 탐정인 ‘나’가
부인을 찾아가지만, 부인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실종한 남편을 신고한 부인치고는 너무 젊고 너무 차분한 레몬 빛깔이다. 남편이 아파트 앞
맨홀 뚜껑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과 사진, 그리고 성냥갑이 유일한 단서이다. 바람을
핀 흔적도, 사라질
이유도 , 빚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 '동백'다방의
성냥갑만이 실종에 대한 단초이다. 탐정 '나'는 이 도시에서 한 인간이 실종되어 남겨진 것이 고작 성냥갑 하나라는 사실에 허탈해 하면서도 동백다방과 남편이
실종되기 전 만났던 상사의 직원 다시로를 찾아 간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다시로의 이야기를 하기 전 흥신소에 정신이 이상한 '누군가'가 있다는
복선이 생긴다. 의뢰자에게 지나치게 굴어서 의뢰자를 자살로 몰고 간 '누군가'가 다시로의 자살을 마치 암시하듯 그려진다. 다시로의 거짓말과
이상한 행동이 이 흥신소에 있는 '누군가'와 행동이 닮아있다는 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사라진
남편의 부인에게 있는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조폭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남동생은 의혹투성이다. 알 듯 모를 듯 뜻모를 이야기만 늘어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일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장례식장에서조차 부인은 슬픈 표정이라기 보다 담담하다. (남편보다 남동생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는데 탐정
'나'는 부인의 그런 표정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때부터
‘나’는
관찰자에서 관찰당하는 자로 변모한다. 그러면서 소설의 방향은 흐릿한 환상세계로 변한다. 묘연한
택시, 묘연해지는
여자, 희미한 거리, 이상한
공중전화박스.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나.................
여기서 의문점 둘, 사라진 남편의 부인이 '나'의 여자로 인식되어 간다는 점이다. 마치 소설의 시작부분을 뒤집어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소설은 마지막으로 향할 수록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면서 모든 주인공들의 관점을 뒤집어버린다. 탐정 '나'는 남편처럼 실종되고 누군가 똥을 싸 놓은 공중전화박스가 , 낯설게
바라보던 아파트 초입의 풍경이 다시 리플레이 된다.
아베 고보가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를 거치며 경제성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도시는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이들로 나날이 인구가 불어났고, 타자와의
소통 부재와 인간 소외가 문제로 떠올랐으며, 실제
곳곳에서 실종 신고가 속출하였다.
모호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도시인의 묘사는 매우 섬세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중전화박스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똥덩어리가 참 기이하게 그려진다. 똥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 세상을 키치라고 하는데 아베 고보의 세상도 그렇다. 똥덩어리를 바라보며 상상하는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허락되지 않는
도시에서 수천 수만의 변기 하나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공중전화에서 배설한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동정을 느낀다.
살풍경한 아파트단지와 호화로운 도시 이면에 공중전화 박스 안에 남겨진 똥은 비키치의 세계이자, 실존의 증명인 셈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편집되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계가 아닌, 한때 우리의 일부였던 똥은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환상과 실재가 깨어지며 편집이 되지 않은 채 보여지는 날 것 그대로의 세계가 바로 비키치의
세계이다.
아베 고보는 허구와 진실을 넘나드는
소설 속 구성을 통해 합리성의 세계 일반을 낯설게 만든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인간이란
처음부터 불확실한 지도 안에 존재해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작가는
일상을 견고하게 지탱하던 지반들이 하나둘 상실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존재 일반의 의의를 캐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존재하는 세계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계이다. 그러나, 어깨 저 너머로 보았을때 존재하는 비키치의 세계를 인정하게 될 때 우리의
지도는 다시 형성된다. (똥덩어리가 ) 편집된 키치의 세계가 아닌, 비키치의 세계에 눈뜨게 될 때 우리의 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아베 고보는
‘자기
지도를 태워버리고 타인의 사막을 걷기 시작하는 것 외에는 어떤 출발도 성립할 수 없는 도시의 시대’에서
미지의 새로운 통로를 탐색하려는 시도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