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번역 -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4
윤여일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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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번역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思想(사상)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러한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두 번째는 <철학에서> 판단, 추리를 거쳐서 생긴 의식 내용. 세 번째는 <철학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통일된 판단 체계.네 번째로는 <철학에서> 지역, 사회, 인생 따위에 관한 일정한 인식이나 견해. 마지막으로 <문학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지는 견해와 주장이다. 대부분이 사상 하면 첫 번째의 뜻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 <사상의 번역: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네 번째 책>인 이 책에 해당되는 뜻은 마지막 의미인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지는 견해와 주장의 의미에 다 가깝다. 굳이 이렇게 사상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란 무엇일까? 바로 쑨거가 쓴 [다케우치 요시미의 물음]을 통해 보는 루쉰의 사상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쑨거의 견해와 주장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쑨거가 이 책을 통해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을 번역 하는 패턴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역사상 인물로 크게 시사를 받았기에 숭배에 가까운 감정에 빠져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의 말투마저 흉내 내기에 이른다.

둘째. 역사상 인물을 추종하는 분위기에 반감을 폼어 상대의 사생활을 검증하는 등 아우라를 꺠뜨리려고 노력한다.

셋째, 역사상 인물이 범한 사고의 한계를 파고든다.

넷째, 역사상 인물이 지적 전통을 일궜다면 상대를 비판해 새로운 지적 전개를 꾀한다.

 

다케우치의 사상적 원점은 [루쉰]이다. 일본에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다케우치가 자신과 시대의 불행을 자각하며 전 생을 관통하는 사상은 루쉰을 통해 형성되었다. 쑨거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물음]에서 루쉰을 통해서 일본 사상과 일본 문학에 육박하는 기반을 다지는 것을 살펴본다.

다케우치에게 문학이란 사상이며, 행위이며, 정치이며, 미학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모두를 초월해 그것들을 생산하고 또 지워버린다. 문학은 희망과 아울러 절망마저도 일신에 모아 사상과 정치와 예술을 토해낸다. 그렇듯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실현하지만 자신은 정해진 틀을 갖지 않는다. 문학은 그것들 모두를 내뿜고 빨아들이는 궁극의 장소다. 그 장소에서 주체는 사상을 정치를 예술을 하며 부단히 자기를 갱신한다. 다케우치가 이런 문학관을 체득하게 된 계기는 바로 루쉰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루쉰]을 작성하면서 문학을 하나의 창작 행위로부터 궁극적이며 본원적인 자기 갱신의 장으로 끌어올렸으며, 동시에 이런 문학관을 세계관에 접목해 세계관이 유동적 양태를 획득하여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끌어내렸다. -P60

 

위와 같이 사상가로서가 아닌 문학가로서 루쉰과의 만남을 다케우치는 쩡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자신을 상대에게 투입하고 끄집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갱신하는 사상적 만남을 쩡짜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쩡짜는 사상적 만남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사상이 살아가는 밥이자, 지식을 일구는 방식이자, 더 나아가면 동양이 자신의 근대를 실현하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P113

 

이렇게 다케우치의 사상적 토대라 할 수 있는 쩡짜는 깨어난 노예가 자기부정과 자기재건을 거쳐 주체성을 획득하는 길로 동양이 자신의 근대로 나아가는 길로써 달리말해 루쉰적 저항을 함의한다.

 

그것이 깨어난 노예의 숙명이다. 주체는 쩡짜로 타자와의 대립속에서 자신을 씻어낸다. 동시에 부단히 회심의 축을 향해 볼며 자기를 재형성한다. 이로써 주체가 얻는 것은 유동성이다, 다케우치가 말하는 행위란 바로 이런 의미다.-P115

 

 

원문 속에서 이미 번역이 시작된다. 사상이란 번역이다. 작가의 사상이 녹여있는 텍스트는 돇자의 의식 안에서 새롭게 번역이 시작되며 유동한다. 이러한 유동하는 의식을 따라 글을 쓴다는 자체가 무척 대단하게 여겨지는 책이었다. 다케시마 요시미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을 투영하여 시대를 읽는 것도 아니다. 다만 쑨거는 다케우치라는 문학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다져가는 '쩡짜' 정신을 승계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루쉰에 이어 다케우치, 다케우치에 이어 쑨거를 잇는 사상의 궤적은 이렇게 유동하는 텍스트가 문학가에게 흘러들어가 그려지는 번역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 안에 시대를 고민하는 사상가가 있고, 그 안에 시대를 깨우는 문학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쩡짜의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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