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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사랑은
저마다의 시기와 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며 그에 따라 형체와 정의도 달라져간다. 이렇게
경험하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사랑은 유동하는 꿈처럼 각양각색 천양지차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야기가 좋다. 나이가
들면 연애 세포도 하나 둘씩 죽어 사라져갈 것 같았는데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로맨틱한 감성과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고프다. 간만에
읽은 로맨스소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을
읽으며 사랑 충전을 간만에 한 것 같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기존의 통념화되어 있는 보이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사랑이야기이다.
어느
날, 월
가에서 가장 촉망받는 변호사인 아버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몸만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딸 줄리아는 여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 한통을 발견하고 자석에 이끌리듯 미얀마로 떠난다. 공항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양 줄리아를 기다리고 있던 우 바를 통해 알게 되는 아버지의 사랑. 줄리아는 아버지의 사랑이 낯설기만 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닌 전혀 다른 아버지의 삶을 우바에게 들으면서 사랑이라는 의미를 되새김 한다.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사랑이야기는 마치
네거티브
필름에서 인화된 화상 자국처럼 떠올라 줄리아에게 선연한 삶의 영상을 그린다.
사물의 참된
성질, 사물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해.
그런 점에서 눈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되지 눈은 우리를
교란시키거든,
우리는 쉽게
현혹된다. 게다가
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다른 감각을 무시하지.
내 말은 청각이나 후각말고 그
이상의 감각을 뜻한다. 내가
말하는 그 감각 기관은 아직 이름이 없는데, 뭐라고
부를까., 그래
마음의 나침반이라고 부르자꾸나
마을에 계속된 재앙과 불운의
그림자는 틴윈을 불길한 아이로 느끼게 한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엄마는 틴윈을 버리고 떠나간다. 아이를
낳지 못해 틴윈을 어여삐 생각하던 옆집 여자 수치는 버려진 틴윈을 거두어 키우게 된다. 버림
받은 충격인지 이후 틴윈은 시력을 잃어가고 수치는
틴윈을 수도원에 보내 수련 생활하게 한다. 시력을
잃어가면서 다른 감각을 키워 사물의 변별력을 배워가며 수도사들에게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게 되었던 틴윈에게 어느 날, 나타난 소녀의 심장소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열린 문이 되어 준다. 장이
서는 날마다 가족들과 함께 감자를 팔러 나오는 미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틴윈은 모든 감각을 열어 임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미미는 틴 윈으로 하여금 세상의
일부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복닥거리는 세상의
일부. 마을의
일부. 그
자신의 일부.
미미와 함께 틴 윈은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미미가 틴윈의 눈이 되고 틴윈이 미미의 다리가 되며 행복했던 시간들은 부자 친척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둘의 재회는 35년 후, 미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뛰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 마치 죽음이 삶의 연장이라는 것처럼, 둘의 심장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멈춘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이죠.
멀리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랑이 가당키나 할까.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믿는 가운데 심장소리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같은 이야기이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사람의 삶이란, 그 자체로 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으로
보여지는 사랑이 아닌 심장 박동 소리 하나로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은 경이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강신주의
다상담1:사랑편>에서
철학자 강신주가 그랬던가. 사랑의 비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타인을 알아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번쩍이는 사랑이 먼저 오고 나서야 타인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틴윈과 미미의
사랑은 이러한
사랑의 비밀을 엿보게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더 아름다운 법. 삶의 경이와 함께 펼쳐지는 동화와 같은 사랑이야기로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