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이들을 방과후 수업에 데려다주고
수업 끝나길 기다리다가 무료하여 근처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서 DVD를 빌려보았다. 며칠 전 <시네필 다이어리 2>를 읽으면서 보고
싶은 영화로 찜해 두었었는데 다행이 도서관에 있었다. 근데 정말이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을 짠하게 하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결백한 사람은 ,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오랫동안 심문을 받으면 분노에 휩싸이거나 자살을 하려고 하지, 반면에
죄가 있는 사람은 종종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울어댄다. 자신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기 때문이지, 유죄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걸 인정할 때까지 계속 신문하는 거야."
1984년 동독,
국가안보부에 근무하는 비즐러의 강의로 영화는 시작한다. 똑부러지는 말투와 실제 고문하는 장면을 녹음하며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모습은 무척
자신만만해 보이며 찌르면 피한방울 안 흘릴 것 같은 냉철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런 그의 눈에 시인이자 극작가인 드라이만은 어딘지 위험한(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사회에서 지나치게 자유로워 보이는 드라이만은 위험한 존재였다. ) 인물로 비춰진다. 아닌게 아니라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자유로운 예술활동은 정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아름다운 크리스타를 눈여겨 보던 문화부 장관 브루노 헴프의 사주로 이들은 도청과 감시를 당한다.
문화훈장까지
수여받는 드라이만은 자신을 향한 감시와 검열을 눈치채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과 크리스타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나간다. 이들을 도청하며
감시하던 비즐러는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예술적인 감성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반면 문화부 헴프장관의 끈질긴 구애로 드라이만 몰래 은밀한
만남을 가진 크리스타를 찾아가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라는 말을 전하기도 하며 권력과 타협할 정도의 스캔들이 필요한 배우가
아니라며 드라이만과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한다. 게다가 드라이만의 친구가 서독으로
밀입국하는 것을 눈감아주기도 한다. 존경하던 작가의 죽음으로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를 치는 드라이만의 피아노곡에
감정의 해일을 느끼며 한없이 감정을 드러내보이기도 한다. 냉정하고 빈틈없었던 비즐러에게 이들의 사랑과 피아노연주는 갇혀 있었던 비즐러의 마음을
열어주는 한줄기 빛과도 같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엿보는 비즐러. 타인의 삶을 엿보며 감정없이 도청과 감시에 익숙하였던, 자타공인의 프로 요원이었던 비즐러의 삶은 이때부터
출렁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드라이만의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운 배우 크리스타와의 사랑을 응원하며 이들을 둘러싼 헴프장관의 음모로부터 구해주고
싶어지는 욕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비즐러의 고요했던 삶 역시도 요동치게 된다. 국가 정보원의 불문율이었던 '타인의 정보를 수집하되
그것을 바뀌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깨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이만의 창작활동을 눈감아주고 타자기까지 숨겨주기까지 하며 그들의
삶을 보호해주고자 하지만, 어찌된 것이 비즐러의 간섭으로 크리스타의 삶은 산산조각이 난다. 이때 비즐러는 알게 되었을까. 타인의 삶을 엿 본
댓가가 무엇이었는지를.......
드라이만이 동독의
자유를 염원하는 글을 서독에 비밀리에 투고하게 되면서 전 세계 언론에서 드라이만의 글에 주목한다. 드라이만이 의심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크리스타의 배신으로 화가 나 있던 헴프장관은 크리스타를 심문하라는 명령을 비즐러에게 내린다. 비즐러는 이들에게 닥친 위험을 감싸주기
위해 또 한번의 모험을 감행하게 되며 (동독에서 생산되지 않는 서독의) 타자기가 숨겨져 있는 위치를 말하면 아무 일 없을거라며 크리스타를
설득한다. 그러나, 안보요원들이 드라이만의 가택을 수색하는 동안 죄책감으로 거리에 뛰쳐나간 크리스타는 달려오는 차에 치여 숨지며 비즐러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난 너무 약했어요. 내가 저지른 일을 다시 바로 잡을 순
없어요...."
이미 타자기를 숨겨
두었던 비즐러. 어쩔 수 없이 크리스타를 취조해야 했던 국가안보국의 최고요원이었던 비즐러는 크리스타를 위해 타자기의 위치를 말하도록 종용했고
그녀는 비즐러의 추궁에 어쩔 수 없이 타자기의 위치를 말하는 것으로 짐을 덜어버리지만, (비즐러도 그렇게 되길 바랬지만 ) 크리스타의 삶에
전부였던 사랑과 예술에 대한 배신은 한 여인이 지니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고통이였던 것을 비즐러는 알지 못했다. 크리스타의 죽음은 드라이만에게는
창작의 열정을 앗아가버렸고, 비즐러에게는 타인의 삶을 착취한 행동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삶 역시도
자유를 박탈당한 채 국가와 정부에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세월은 흘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비즐러는 과거 드라이만의 도청과 감시의 실패자로 우편배달부로 전락해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야심차게 강의하던 냉혈한 비즐러는
이제 없다. 조금은 초라해보이는 정복차림에 다소 기운이 빠진 모습이지만, 과거 국가안보국 요원이었던 비즐러에서 느껴졌던 각진 느낌은 없다.오히려
자유로와 보인다고 할까. 크리스타가 죽은 후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던 드라이만에게 우연히 만난 헴프 장관은 드라이만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감시보고서'의 존재를 알려주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쓰여있는 도청자료를 읽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감시했던 HGW XX/7이라는 인물로 인하여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이만은 우편배달부가 된 비즐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친구 요원 HGW
XX/7에게 바치는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를 선물한다.
"No, It's for me 저를 위한
것입니다."
드라이만과 비즐러는 단 한번의 만남도 없이 서로를
이해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크리스타'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타인의 공감'을 할 수 있는 삶의 교집합이다. 비즐러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타인의 삶을 도청하고 감시하던 감시자가 아니라 비즐러 스스로 타인의 삶(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위해서 희생하였던 순간들이 결국
자신의 삶(자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의 경이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을 때 생기는 우리안의 작은 균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되는 이 '타인의 삶'의 공간은 결국 나의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 삶에서 한번쯤 겪어야할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정말이지 너무 멋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