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터널을 지나오고 나니 문득 청춘 그 자체가 퍼레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몽상가들들을 보면서 어쩌면 청춘이란 혁명과 사랑이 혼재되어 몽상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는지... 청춘들에게만 허락되는 이 몽상의 상태는 퍼레이드처럼 혼잡하고 어지러울 테니까......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는 딱 그런 느낌이다. 혼잡하고 어지러운 젊음의 내음처럼 현기증이 일어났다.

 

 

나는 요시다 슈이치가 읽는 세상법이 마음에 든다. 요시다 슈이치는 선과악이나 예와 아니오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는 작가이다. <사요나라사요나라><악인>에서 보듯이 선과악의 선명한 경계를 거부하고 선과악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럴들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꿴다. 젊었을때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서 고착되어 가는 규범이나 가치가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모른다. 그렇기에 나이 들기전에 유연한 사고를 자주 꿰하지 않으면 머리 역시 녹이 슨다. 그렇게 스는 녹이 바로 고집과 아집이다. 이렇게 삶에서 규정되어진 이분법적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피폐하게 하고 극단으로 몰아가는지를 두루 살펴볼 줄 알아야 머리에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읽으면서 나름 머리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마냥 조금은 젊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들에게서 청춘이라서, 청춘이기때문에 존재하는 불안과 방황의 모습들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모든 판단을 보류한 채 이들을 따라가며 청춘을 맘껏 음미해 볼 수 있었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서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옴니버스형의 구성으로 조금은 무거웠던 전작들과 달리 <퍼레이드>는 청춘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청춘의 현기증같은 작품이다.

 

 

남남이 살아간다는 것, 타인과 타인이 만난다는 것 자체에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청춘남녀 다섯 명이 우연히 한 지붕에 살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선배의 애인을 짝사랑하는 요스케를 시작으로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요스케는 맨션에서 가장 친근하고 이상적인 캐릭터이다. 그와 반대로 가장 불안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고토는 배우인 남친만을 기다리며 떡진 머리와 추리닝을 입은 채 백수를 자칭하며 살아간다. 조금은 한심할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남친의 아픔을 이해할 정도로 착한 심성을 지녔다. 일러스트가 전공이지만 잡화점에서 일하며 술과 방탕으로 무장한 듯 보이는 미라이는 가장 대책 없어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가장 철이 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거기에 가장 어리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데다가 밤일을 하는 사토루는 더욱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의외의 반전캐릭터이다. 맨션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인지 이들의 고민상담을 맡고 있는 성격 좋은 나오키는 다섯 명 가운데 가장 선한 캐릭터이지만 반대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로 사회적으로는 위험인물로 보여지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는 보류캐릭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벼우면서도 건드릴 수 없는 긴장감이 이야기 전체에 흐른다. 남자 셋 여자 둘이 한지붕에 살면서 전혀 트러블이 없는 이유는 이들 가운데 흐르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다. 고토의 말대로 하면 '계산된 교제' , 즉 모두 선한 가면을 썼기 때문???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그런 장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을 거라면 웃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인 만큼 모두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미라이도 나오키도 요스케도 여기서는 모두 선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계산된 교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물론 이런 생활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순조로울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중략)텔레비전을 켜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저주하는 싸움판뿐이고, 신문을 보면 온토 이권다툼뿐이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남자 쟁탈뿐이다,

솔직히 나는 인간의 아니, 이 세상의 악이라는 모든 악의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물론 내가 질려 하든 말든 간에 이 세상에 악의는 존재할 테고, 그렇다고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면 그건 너무 방관적인 태도가 아니냐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비웃는 사람의 그 악의마저도 이제는 진절머리 나게 싫다.

 

 

이들은 모두 도쿄에서 이방인이자,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남녀이다. 유일한 보금자리인 맨션에서 이들의 생활은 평행선을 그린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평화를 유지하지만 시내에 여성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평화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어른들의 잣대로는 혀를 끌끌 차면서 보게 될지 모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지만 적어도 이들에게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청춘이기에 가능한 탈규범과 탈가치에 대한 도전장은 목적 없는 이상의 파편이자 청춘이기에 가능한 몽상이다. 바로 요시다 슈이치가 <퍼레이드>를 통해서 내미는 청춘의 도전장이란 바로 이러한 객기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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