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돌봄의 정치 - 플라톤 정치철학의 기원과 전개
박성우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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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스스로 악인이 아니며 정의로운  길을 가고 있다 자부하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회의앞에서 나는 정말 '잘'살고 있는지 되묻곤 한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또는 상투적으로 보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사유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철학적이다. 알베르 까뮈처럼 삶의 의미는 찾을 수 없다라는 극단적 회의보다는 나는 그래도 삶의 의미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아주 작은 것에도 삶의 의미는 존재한다. 《영혼 돌봄의 정치》의 저자는 바로 이러한 삶의 의미를 '철학'에서 찾았다. '좋은 삶' 이 지닌 철학적 의미는 결국 '앎'과의 귀결인 것이다.

플라톤 정치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통해 말하고자 한 기원은 정치공동체 안에서 좋은 삶을 추구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패러다임인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가 최고의 행복인 현재에 좋은 삶의 추구를 다시금 공적인 장이나 정치의 장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자유주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공적 요소가 개입하는 것을 개인의 독립과 자율성을 해치는 위험한 요소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자율과 독립성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근본 가치를 보존하면서, 개인의 좋은 삶을 선택하고 추구하는데 공적, 정치적 영역의 지원을 받을 길은 없는가?를 살펴보면서  자유주의 국가와 자유주의 정치이론이 지금까지 의당 배제했던 좋은 삶의 선택 문제가 정치의 장에서 재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영혼 돌봄정치라는 두 요소가 결합할 때 궁극적으로 좋은 삶을 위한 정치의 회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대화를 통해 노력해서 얻어야 하며 정의와  최선의 삶의 방식을 공동담론으로서 고민해야 한다고 하였다. 개인의 자유와 각자의 좋은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좋은 삶에 대하여 정치공동체를 형성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골자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말하는 플라톤적 영혼 돌봄의 정치는 흔히 오해하는 바와 같이 좋은 삶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개인에게 권위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좋은 삶을 탐구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의미의 정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제안하는 영혼 돌봄은 넓은 의미의 정치 영역에서 이뤄지지만, 외적인 강제나 전체주의적 권위 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소크라테스적.플라톤적 영혼 돌봄의 정치는 현대 자유주의적 정치이념과 배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혼 돌봄의 정치는 공화주의의 정치적 이상에도 적절히 부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관조하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이러한 관조적 삶을 살기위해서는 정치공동체 안에서 '좋음'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한다. 좋음이 항상 옳음이 될 수 없다. 가장 잘 사는 삶을 나는 좋음(善)옳음(정의)가 연결되어질 때라고 생각한다. 정의를 지향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좋음이라는 도적적 가치에 있다면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사회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우리사회를 바로 세워줄 것이다. '정의를 고민하는 것이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롤스의 정의론 이후 방황하는 정치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줄 책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적인 것으로의 회복이야말로 마지막 남겨져 있는 우리의 희망정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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